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코뚜레

 

 

 

 

 

어느 댁에 방문했다. 현관에 코뚜레가 걸려 있다. 코뚜레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코뚜레를 문 앞에 걸면 집안이 편안하고 사업이 잘 된다고 부모님이 걸어놓았다고 했다.

코뚜레는 소의 코에나 거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예전에 아버지는 일소가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가 뿔이 날쯤 되면 코뚜레를 걸어주었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노간주나무를 물에 불리고 불에 달구어 둥글고 갸름하게 모양을 만들었다.

소 콧구멍을 뾰족한 나무로 찔러 뚫은 다음 코뚜레를 끼우고 단단하게 묶었다. 송아지는 뒷발질을 하며 펄펄 뛰었지만 아버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코뚜레를 끼우고는 소잔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뛰쳐나가 논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송아지도 코뚜레를 해서 외양간 기둥에 묶는 순간 온순해졌다. 코뚜레를 하고 나면 워낭을 매달았다. 힘이 세고 난폭한 황소도 코뚜레를 움켜쥐면 이내 한풀 꺾였다. 소의 여린 살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끼워 넣었으니 버틸수록 고통은 컸을 테고 순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코뚜레나 멍에나 소를 통제하고 압박하는 수단이다.

코를 뚫은 상처가 아물면 소를 끌고 들로 나갔다. 고삐를 단단히 잡고 앞에서 끌면 아버지는 이랴. 워워. 쯧쯧 하면서 멈추고 가는 연습부터 소가 이랑을 넘지 않는 훈련까지 가르쳤다. 한 며칠 들로 나간 소는 이내 일소가 되었다.

일을 하고 들어온 소는 쌀겨에 콩잎을 섞어 주었다. 봄이 되면 쑥 뿌리를 캐서 삶아먹였고 소가 힘들어하면 막걸리를 받아다 먹이고 했다. 코뚜레를 치켜들고 입 한쪽을 벌려 막걸리를 부어주면 벌컥벌컥 받아먹곤 했다.

울음이나 워낭소리만으로도 소의 건강 상태를 알아챘다. 마당 한쪽에 말뚝을 박아 소를 내다 묶고는 잔등을 긁어주며 엉덩이에 매달린 소똥을 떼어주고 등에를 잡아주는 등 겨울에는 덥석을 입혀 추위로부터 소를 보호했다. 이렇게 소는 보물이고 재산이다.

농번기에는 사람 두 몫의 품값을 받았고 잊을만하면 한번 씩 송아지를 낳고 했다. 사람보다 소 여물 먼저 챙겼고 산통을 하면 외양간 앞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손했다. 소가 쇠전에 나가면 언니가 시집을 같고 자식들 학자금이 되었으며 논 몇 마지기의 땅 문서가 들어 왔으니 소에 정성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쇠풀을 뜯기는 것이 너무 싫었고 볏짚을 써는 작두질을 피해 몰래 친구 집에 숨었다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소가 코뚜레에 코를 끼어 온순해졌다면 우리는 소를 거두는 일에 코를 끼어 늘 소부터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우리 집 대소사에는 소가 한 몫 했다.

지금이야 농기계의 발전과 보급으로 트랙터가 논과 밭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 잘 다듬은 논에 이양기로 모를 심고 수확 또한 콤바인이 하기 때문에 들녘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들녘에 들밥을 머리에 이어 나르고 지나가던 행인을 세워 막걸리 한 잔 대접하던 모습대신 자장면 같은 배달음식이 들녘으로 나온다.

지금의 소는 좋은 환경에서 새끼를 낳고 살을 찌우며 육질이 우수한 품질의 소로 거듭나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산간오지에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곳도 간혹 있지만 보기 드문 풍경이다. 코뚜레를 보면서 유년의 풍경을 되새김질 하는 나의 뿌리는 농경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해본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