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경국지색(傾國之色)의 비운(悲運)

 

 

 

서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미인이다.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많은 미녀들을 보냈는데 그 중에서 서시도 오나라로 갔다. 서시는 월나라 어부의 딸이었다. 가난해 늘 굶주렸고 가슴앓이로 통증으로 얼굴을 자주 찡그렸다.

서시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오나라 왕인 부차에게 많은 토목공사를 일으키게 하면서 오나라가 멸망의 길로 가는데 일조(一助)를 했다. 중국최초의 여자 첩보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시는 오나라가 망했을 때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悲運)의 여인이었다.



31세의 나이로 죽은 항우의 우미인



화가(畵家)의 농간으로 비운의 삶을 산 여인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후궁이었지만 임금의 초상화 면접에서 떨어졌다. 가난한 왕소군은 화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흉하게 그려진 것이다.

약 5년간 황제에게 눈길 한번 못 받은 왕소군은 흉노왕 호한야선우를 위한 연회석에서 흉노왕에게 선택됐다. 황제는 처음에 공주를 보내려 했는데 흉노왕이 왕소군을 선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황제는 왕소군을 보는 순간 정신을 잃을 정도의 천하절색 (天下絶色)의 미모(美貌)에 넋을 빼앗겼지만 국가 간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황제는 임금을 기만(欺滿)한 죄로 화가 모연수를 처형했지만 왕소군은 흉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왕소군은 평생 동안 향수의 슬픈 시를 쓰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비(悲運)의 인생을 마감했다.

초선은 왕윤의 수양딸이었다. 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 왕윤은 동탁과 여포사이를 갈라놓기 위하여 초선을 이용했다. 동탁이 죽자 여포에게 갔고 여포가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자 조조에 의해서 관우에게 갔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와 장비와의 의형제 관계가 깨질까 염려하여 초선을 죽였다. 초선역시 비운(悲運)의 여인이었다.



처절할 정도로 예쁜 양귀비 꽃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비였다. 원래는 현종의 18대 황자 수나라 왕의 여인이었으나 그녀의 미모에 반해 아버지인 현종이 비로 삼은 것이다.

양귀비꽃과 관련된 양귀비는 양귀비꽃이 그 아름다음으로 처절(悽絶)할 정도로 예쁜 꽃이듯이 양귀비는 매력의 여인으로 타고난 미인이었다. 시기와 질투는 물론 정치적인 것과 관련하여 너무 심한 욕심을 부렸기에 안·사의 난 소용돌이 속에서 자살을 한 비운(悲運)의 여인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모두 비운의 삶을 살지는 않지만 공교롭게도 중국의 5대 미인들이 시기(猜忌)나 정치에 이용되면서 모두 비운(悲運)의 삶을 살았던 것을 살펴본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