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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빨래판

 

 

 

 

 

볕 좋은 창가에 앉아 밖을 본다. 노랗게 망울을 터트린 산수유와 매화사이를 노랑나비가 날고 제철을 용케도 아는 파리도 유리문에 붙어 껄떡대고 있다. 분명 봄은 왔는데 현실은 춥기만 하다.

이맘때면 놀이터엔 아이들 재잘거림이 끊이질 않았고 산책 나온 발길들로 분주했는데 가끔 지나치는 행인 말고는 한적하기만 하다. 황사와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이지만 주말 나들이는커녕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다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운동을 하고 누구도 믿지 못해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 옆에 사람이 가까이 서는 것이 두렵고 음식점에서도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게 되고 가급적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움직이거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한다.

이렇게 사람을 접하는 일이 두려우니 생계에 관련된 꼭 필요한 소비 말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람 하나 들지 않는 매장을 종일 지키고, 허탕치고 돌아오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면 다시 매장으로 향하며 개점휴업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꽃을 봐도 반갑지 않고 나비를 봐도 예쁘지가 않다.

봄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어떻게 지금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과 답답함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베란다 한 켠에 세워져 있는 빨래판을 본다. 닳고 닳아 결이 뭉툭해진 빨래판,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것이니 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아이들 기저귀를 받아내고 집안의 울화와 내 분노를 받아낸 빨래판이다. 속이 풀리도록 방망이질을 해대고 거품을 냈다 씻어내며 온갖 미련과 화풀이까지 속속 받아내던 빨래판이 이젠 세월과 함께 나와 함께 낡아가고 있다.

나뭇결의 갈라지고 터진 틈으로 까맣게 찌든 세월이 훈장으로 남겨졌지만 지금도 운동화를 빨거나 걸레를 빨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누군가는 빨래판으로 연주를 하고 이발소에서는 빨래판을 의자에 걸쳐놓고 아이를 그 위에 앉혀 이발을 하기도 했다.

지금 심정 같으면 코로나19를 빨래판에 앉히고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어느 곳에도 전파될 수 없도록 뜨거운 물을 끼얹고 빨래비누로 박박 닦아내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싶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다 피식 헛웃음이 났다.

내 마음을 잘도 아는 빨래판은 아마도 그럴 수만 있다면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세탁기에 밀려 베란다 한구석에서 소멸을 저장해가고 있지만 답답한 마음을 빨래판에 박박 비벼 빨고 나면 후련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다. 사람이 사람을 의심하게 되고 세상이 세상을 의심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헛기침 한번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간혹 목이 간질거리거나 목에 뭐가 걸린 듯해 기침한 번 하고 싶어도 혹여 의심을 받게 될까봐 두려워 속으로 삼키거나 침을 모아 넘기면서 순간을 견뎌내기도 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일 수도 있다. 방심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친 염려로 정신건강에 해을 주는 것도 큰 문제이다. 우리가 아무리 꽁꽁 싸매도 문밖엔 봄이 오고 있듯이 곧 상황에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놓지 말고 견뎌보자고 자신에게 주문하면서 연이어 터질 꽃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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