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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誠愛칼럼]잃어버린 마을-무등이왓

 

 

 

 

 

제주에 유채꽃이 피고 있다. 노오란 유채꽃의 물결. 바다의 색깔과 대비를 이루면서 환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 눈부신 4월의 초입에 제주는 도저히 씻어낼 수 없는 아픔의 흔적이 있다. 바로 1948년(무자년) 4월 3일의 기억이다.

그 중에도 4월의 유채밭과 관련된 일은 다랑쉬동굴이다. 다랑쉬동굴은 다랑쉬오름 자락 밑 밭 두둑 사이에 있는 동굴이라고 볼 수 없는 평지의 돌밭에 난 굴이다. 1948년, 이 마을 부녀자와 아이들 11명이 이 동굴에 숨어들었다가 진압군이 피운 맞불 연기에 질식해 모두 죽은 참화의 현장이다. 이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1992년 4월 유채꽃이 피는 봄날 발굴되어 당시의 처절했던 비극을 일깨우며 보는 이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했다. 제주 4 3을 외부에 알리고 끊임없이 증언해온 제주 토박이 오승철 시인은 이 현장을 <다랑쉬오름> 작품을 통해 “무자년 솥과 사발, 녹 먹은 탄피 몇 개/ 한 마을 이장해가듯, 고총같은 동굴이여.”라며 정직한 어조로 밝힌다. <바람 난장> 행사에 초청 받았다가 알게된 “무등이 왓”마을도 이로 인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제주의 <바람 난장>은/시와 그림과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축제의 모임이다/장르간의 벽을 허물고/너와 나를 허물고/빈 몸으로 모이는 아름다운 모임이다/이 바람 난장 식구들이 4 3을 기념해/남제주 안덕 무등이왓에 모였다.

무등이왓은 동광리 5개 부락 중 가장 큰 마을/대나무가 많아 /탕건, 망건, 양태, 차롱을 만들던 마을./무자년 섣달, 꿈에도 몸서리치는 일이 여기서 일어났다/ 도너리 오름 앞쪽 큰넓궤에 숨어든 /마을 사람들이 100명 넘게 죽었다

잠복학살터는 토벌대원들이/전날 죽은 동네 사람들을 수습하러온 사람들을/잠복하면서까지 죽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사람들을 잡아다 짚더미나 멍석을 쌓아/그대로 불을 질렀다/모두 어린애거나 부녀자였다

광신 사숙과 물방아터를 울담따라 도니/봄동이 푸릇 고개를 내밀고 꿩미농도 싱긋거린다/오승철 시인은 댓잎들 수런거리는 소리를 술잔에 따라 절을 했고/이정순 오카리나 연주에/박연술 무용가는 거친 돌밭에서 맨발로 춤을 추었다 /김정희 낭송가는 동백 떨어지는 소리로 낭송을 했고/ 김해곤 감독은 그 소리까지를 비디오로 촬영했다

“난 돼지집에 숨언 살았수다 /살려줍서 살려줍서 허는 애기 놔두고 /나만 혼자 살아나수다“/헛묘를 돌아나오니 /정겨운 연기 피우듯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올 듯하고 /저 오불조불한 올레길로 조막만한 아이들/금방이라도 노래 부르며 뛰어나올 듯하다

-拙詩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2001년 4월3일 세운 표지판에 새겨진 유일한 생존자 할머니의 증언이 끔찍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몇 십 년이 지나도 해진 뒤엔 이 일대 사람이 얼씬 안 해요.” 평생을 동광리 살아온 마을 사무장의 말이 아직도 아프게 와 닿는다.

유채꽃과 에메랄드빛 해안, 이국적인 풍경,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국제 도시 제주가 이렇게 가슴 저린 비극을 안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증언은 시적상상력의 힘을 넘어서 사실(史實), 사실(事實)에 기초하여 현장을 직조하여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역사는 다 모른다고 해도 , 아니 모른 체 한다고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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