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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배려심이 꽃 피는 세상

 

 

 

 

 

바야흐로 봄꽃이란 꽃은 다 피어나고 있다. 산수유로 시작해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피더니 지금은 벚꽃이 만발했다. 때가 되면 소리 없이 피어나 봄을 채우는 꽃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은 어수선해도 봄은 봄이다. 봄에는 온갖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 자연은 고마운 것들을 끝도 없이 피우는 계절이다.

지난해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다. 벨 소리에 현관을 나가보니 젊은 엄마가 서너 살 아기와 서 있었다. 이유는 며칠 전 위층에 이사를 왔는데 이 어린 아들이 뛰어다녀서 시끄러울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좁은 데 살다가 넓은 곳으로 오니 좋아서 막 뛰어다닌단다. 앞으로 조심을 시키겠지만, 이해해달라면서 과일 바구니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연히 아이가 뛰어다니지 않겠느냐면서 괜찮다고 했다. 극구 사양해도 과일 바구니를 놓고 죄송하다며 인사를 하고 가 버렸다.

그래서 얼마나 시끄러운가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도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났다. 그런 후에도 사실 위층에서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런데 어제 저녁나절에 위층에서 인터폰이 왔다. 잠시 내려오겠다고 한다. 그 아기 엄마는 며칠 전 손님이 왔는데 큰 남자애들이라 쿵쿵대며 걸었다고 했다. 아래층에 죄송해서 장 보는 김에 과일을 사 왔다고 했다. 나는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가져온 과일을 받기가 미안해서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굳이 두고 가기에 근래에 나온 내 시집 한 권을 건네주었다. “잘 읽을게요, 고맙습니다” 하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 가는 젊은 아기 엄마가 참으로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층간 소음으로 자주 시비가 생기기도 한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위층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여름에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였다. 그때 우리 집은 10층이었고 11층에서 갑자기 베란다 쪽으로 물 쏟아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봄에 장을 담가 항아리 뚜껑을 열어놓은 곳으로 구정물이 튀어 들어갔다. 깜짝 놀라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11층 사람은 비가 올 때 베란다 유리창을 닦는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마구 물을 바깥 유리창에 뿌려대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장 항아리에 구정물 다 들어갔잖아요.”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위층에서는 그제야 사태파악을 했는지 “죄송해요”라며 기어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마에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때 베란다 바깥 유리창을 닦는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러나 공동 주택에 살면서 비도 조금씩 내리는데, 자기 집 깨끗 하자고 아랫집은 생각 안 하고 물을 마구 퍼붓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더구나 날이 더워서 창문을 다 열어놓았는데 먼지 씻긴 물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도무지 다른 사람은 생각 안 하는 배려심 없는 소행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항아리 속 된장의 구정물 튄 것은 걷어버렸지만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또 한 번은 위층에서 베란다 밖의 선반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때도 바로 밑의 우리 집은 열어놓은 유리창으로 물이 마구 튀어들었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무엇을 빻는지 계속 쿵쿵 울려대는 소리가 났다. 인터폰을 해도 받지 않았다. 그때도 몇 시간을 쿵쿵 울려대서 밤잠을 못 잤던 기억이 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층간 소음 때문에 신경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요즘은 <층간 소음 이웃 사이 센터>라는 것이 있다. 환경부 산하 기관으로, 최근 급증하는 공동 주택의 층간 소음 문제가 이웃 간의 분쟁에서 사회 문제로 확대되자, 이를 예방하고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설치한 부서라고 한다.

공동 주택에 살자면 서로 지킬 건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위층에 사는 젊은 아기 엄마가 배려심이 참 깊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흉흉한 이때 배려심이 꽃 피는 세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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