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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화개장터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고 보면 창밖의 풍경이 달라졌다. 열세 살 소녀의 젖가슴처럼 동그란 목련의 꽃봉오리가 눈길을 끈다. 어디 이뿐이랴. 창문 아래 수목들이 그새 움을 틀었다.

새싹이 돋는 걸 보니 봄이 완연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은 봄이로되 바람은 아직 겨울이 남았다. 이럴 때 내 앙가슴도 왠지 설렌다. 더구나 이 겨울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재앙에 휩싸여 있다.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일어나면 전염병 이야기에 마스크 이야기다.

사회적 거리를 두어 사람을 만나도 2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대화를 하라고 한다. 도시도 한산하다. 길거리에는 민중의 수도 줄었고 지하철을 타도 승객들의 자리가 텅텅 비었다. 참으로 암울하고 엄습한 겨울이다. 그런데 이 암울한 겨울의 벽을 뚫고 보이지 않는 계절의 변화가 왔다.

봄이다! 봄이로다!

봄이 오니 봄병이 든다. 잊었던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뜨거운 햇살의 이국의 풍경이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래도 좋다. 떠나고 싶다. 어딘가로 훌쩍 마음 맞는 사람과 은밀한 여행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듯 봄이 오면 매화가 활짝 핀 섬진강 변 풍경이 떠 오른다. 가고 싶다. 오늘따라 섬진강을 따라가 화개장터로 가고 싶다. 화개장터가 어디인가.

고향이 하동이 아닌 나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우연찮은 일로 하동을 찾는다. 특히 봄이 막 시작되는 4월 초엽에 하동에 가면 참 좋다. 하동 나들목을 지나 섬진강 국도변을 들어서면 그 정경에 숨이 막힐 정도다.

섬진강 변을 따라 백 리 벚꽃길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르는 십리벚꽃길이 잘 알려져 있다. 그 길을 다 가보지 않아도 좋다. 지리산 길목 화개장터에 둘러보라. 사실 화개장터는 해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 5대 장터에 들어갔다. 지리산 안의 화전민들이 들고 온 산나물과 인근의 하동, 구례 지역에서 생산된 쌀보리들이 거래되었고 멀리는 담양, 충무에서 고등어, 갈치, 미역, 김과 같은 해산물들이 들어오던 장터가 바로 화개장터였다.

5일 장이 서면 무리를 지은 보부상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잘 알려진 김동리의 ‘역마’라는 소설의 무대도 이 화개장터다.

봄이 되면 화개장터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온갖 볼거리들이 한꺼번에 벌어진다는 화개장터 벚꽃축제에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가볼 생각이다.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장터에서 새로 생긴 온천장까지 이어지는 벚꽃 아치는 잊을 수 없다. 오래된 벚꽃의 무리가 하늘을 가리고 터널처럼 둘러서 있다. 바로 그 옆에 오밀조밀한 차밭들이 눈과 코를 자극한다.

봄날, 누구나 한 번쯤 이곳에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화개장터에 가면 허전한 배도 채울 수 있다. 바로 눈앞의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재첩국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걸치면 더할 나위 없다.

화개장터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운 다음 쌍계사나 청학동,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최 참판 댁을 찾아 가봐도 좋다. 정말 하동엔 볼거리가 푸짐하다.

이승의 삶이 버거울 땐 하루쯤 날을 잡아 하동의 섬진강 변을 걸어 보라. 그중에서도 빼어놓지 말고 하동군 매진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에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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