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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뜨락]코로나 시대의 종교

 

 

주말이면 거주하는 암자에 힘겹게 오르는 등산객들과 몇마디 대화를 주고 받다 보면 지난 날에는 열렬한 개신교인이었지만, 현재는 “안나가요”라고 말하는 이들과 가끔 마주 할 때가 있다.

그들을 차방으로 초대해 차 한잔을 나누며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몇마디 주고받다보면 종교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생각하게 된다.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세상이 코로나발 위기에 직면하고 어려움에 놓여 있음에도 상식에 어긋난, 몇몇 대형 교회가 오히려 균을 퍼트려 세상을 위기에 처하게 한 사례만 보면 그 진위를 떠나 종교의 역기능과 바이블을 제 멋대로 해석하는 목회자의 이단화를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불교의 경전도 창시자가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 창시자가 떠나신 후 제자들에 의해 문자화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며 창시자와 기록자 사이에 ‘전달자’가 있는 경우가 있었으며 창시자께서 ‘하셨다’는 말씀 또한 ‘전달자와 기록자의 해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기록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해진 경전이니 경전 내부 또는 경전 사이에서 차이점이나 모순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런 이치이다. 이런 과정을 무시한 채 “경전의 모든 기록은 절대자의 계시로 기록된 것이기에 오류가 없다”라며 무조건 맹신하면 그때부터 그 종교는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인민의 아편’이 된다.

20세기 후반 한국 종교사에 주목할 만한 것은 개신교 부흥의 단초가 된 상가교회라는 건축학적으로 특수한 종교 건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상가에 들어선 교회는 상업시설에 종교가 들어가는 전무후무한 종교건축의 형태였으며 세계 도처에서도 선진적인 시도였다.

교회가 대형마트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도 여러 교단과 교파가 들어가 있는 형태의 상가 교회는 경쟁적인 상업행위와 종교행위를 원스톱 쇼핑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 성과를 이뤄웠으며 반면 산중의 수도원 기능에만 집중하는 사찰의 범주에서는 도심포교에 진력해야 교세 확장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이다.

코로나 이후의 종교질서는 가장 자본주의적이었던 개신교의 발흥이 점진적으로 꺼져 가고 있다. 세속의 가치에만 너무도 크게 비중을 두었음이 문제였다.

창궐하는 전염병에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대다수 국민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에도 사이비 개신교 집단과 일부 보수적인 교회가 집회를 강행해 확진자가 더욱 증가하면서 개신교 뿐 아니라 종교계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점점 잃게 했다.

코로나 시대 이후 탈종교화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종교계는 절대적으로 시민의 아픔과 생업을 보듬어야 할 시점이다. 진정한 신앙은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적 아픔과 고통을 보듬는 것이다.

신뢰하고 화합하며 연대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갈등과 편협한 선교행위는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가 명확하며 무분별한 선교를 막기 위해선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해졌다.

차별금지법은 종교, 성별, 장애, 인종 등을 이유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다. 차별의 금지는 헌법에 명시된 평등이념을 구체화하는 법이기도 하지만 종교, 인종 등의 포함 여부에 따른 반대와 혐오 증폭으로 입법발의 조차 쉽지 않지만, 새롭게 개원하는 국회에서는 반드시 선결되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이후의 종교는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 보편적 인권과 평등의 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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