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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현대인을 위한 몽유도원도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전예약을 하여 얼른 다녀왔다. 다중이용시설이 임시 폐쇄되기 직전이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박물관, 미술관 관람에 목말라 있던 중 몇 개 시설은 사전 예약만 하면 방문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반가웠는데 다시 폐관 소식이 들리니, 그리하는 것이 백번 맞다 싶으면서도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날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 본 것은 <요지연도>와 <십장생도>를 모티브로 제작된 미디어아트 입체 영상이었다. 대자연 속의 신선놀음이 화려한 색채로 펼쳐지고 있었다. 공간을 두르고 있는 널따란 벽 위에 3D 영상이 시원하게 펼쳐졌고, 바닥에도 화려한 꽃길과 은하수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로 외출조차 쉽지 않다 보니, 찌든 현실에서 도피해 대자연의 품속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것이 옛사람뿐 아닌 바로 지금의 나의 로망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요지연도>는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기에 완성되었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중국의 서왕모와 목왕의 연회가 펼쳐지고 있으며, 초대받은 신선들도 구름, 봉황을 타고 모여들고 있다. 새로 개관한 영상관도 옛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도 한동안 찾아갈 수 없겠지만 어차피 옛 그림에 등장하는 신선놀음들이 대부분 허구이니, 독자들도 어려운 시절 자신만의 청명한 세상을 마음속에 그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들 옛 그림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오늘 소개해 보고자 한다.

꿈에 그린 세계, 마음속에 그린 세계에 관해서라면 옛 그림 <몽유도원도>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듣고 3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 한다.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산을 오르다가 갈림길에 들어섰고, 기암절벽과 구불구불한 냇가를 지나자 어느 마을을 만났다. 사방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이고 널따란 복숭아나무 밭이 있는 마을, 당대 최고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마을이었다. 저 유명한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마을이기도 했다. 화가 안견은 꿈 이야기를 따라 왼쪽 하단 오솔길을 실제 풍경을 토대로 그렸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높은 산봉우리, 그리고 가장 안쪽의 평화로운 마을은 상상을 토대로 그렸다. 현실과 꿈이 신비롭게 융합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와 <도화원기>는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재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문인화의 계통을 이어 최근까지 활동을 해왔던 서세옥은 복숭아 그림을 즐겨 그렸다. 특히 소년과 복숭아가 등장하는 그림이 일품이다. 제 덩치보다 큰 복숭아를 어깨에 지고 가는 소년의 모습이 개구지다.

푸른 아크릴 물감으로 흐트러지게 표현된 몽유도원도의 모습이 새롭고 신비롭다. 석철주는 옛 그림을 본래보다 훨씬 큰 크기의 캔버스에 아크릴로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한다. 선비들이 꿈에 그렸던 아름다운 풍경은 훨씬 시원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고 아름다운 색채도 입혀졌다. 하늘색 아크릴 물감으로 완성된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는 시원한 자연의 바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현영은 감각적인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산수화를 다시 그린 작가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영수증의 바코드에 착안해 가로세로 바코드 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산수화를 완성했다. 간혹 작가가 실제로 가지고 있던 영수증의 숫자와 글씨들이 캔버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소비와 물질사회의 표식으로 가득한 산천은 작가의 고된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산수화는 감각적인 색채와 무늬를 입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늘 동경하고 있건만 일상은 우리를 쉽게 그리로 안내하지 않는다. 몽유도원도에 등장하는 복숭아 마을은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청정지역이기도 하겠지. 그곳에 직접 가지는 못해도 옛 그림과 옛 그림을 모티브로 한 작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얼마간 휴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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