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등은 몸이 아니라 어떤 말이다
순수한 의문에는 순수하기 때문에 더 강렬한 분노가 예비되어 있다. 법기술의 무법으로 정의를 인멸한 죄, 뿌리도 없이 꽃을 피운 죄, 정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너는 순식간에 진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의아할 뿐이다. 잠시 너의 바닥 없는 허공을 인정하노니 답하라.
목련이 바람을 끌어와 제 목을 치고 있다 골목마다 절명시가 낭자하다 봄날이 목숨 같다
이롱증 앓던 고막 찬바람에 걸어놓고 당신 발소리 새긴다 각혈하듯 꽃 피는 소리 귀가 열릴 때, 오시라
홀로 바다에 맞서 그는 이기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텅 빈 마음도 실은 꽉 찬 마음이어서 누군가 와서 당신의 허무에 날개를 얹으리라 나비는 날개로 허공을 만질 줄 안다
어머니! 엷은 먹물로 그린 그림처럼 당신이 보입니다. 마지막 먼 산은 이미 지워졌고 붉은 옥사가 연분홍으로 물들어가네요 이대로라면 저는 제 안의 먹방으로 고요히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이 저의 처음 당신의 품이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깊고 험한 길을 돌아 당신에게 가는 길입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네요 묶인 손을 내밀면 만져질 듯한 데까지 보입니다 보이던 것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자리에 어머니 품에 안기는 아기 저의 모습이 짙어집니다 비로소 이별 없는 깜깜한 밤이 옵니다 눈 감지 않고 이대로 당신의 품에서 아들의 생을 멈추겠습니다 - 1930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아들 이○○ 올림
곡예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훈련 머리카락 위를 전차처럼 전진하는 마음 바늘 끝에 선 낙타가 세계를 긴장시킨다 슬픔을 쌓아 도달한 높이에 본 적 없는 우아한 자세를 전시한다 길에서 길을 뽑아 촘촘한 안전망을 허공에 설치하는 곡예는 신에게 드리는 경배 실핏줄처럼 번진 수많은 갈래 중에 고난을 걸어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기울어지고 냉정해지기 위해 불을 삼킨다 한 발도 놓치지 않고 칼날 위에 대평원을 건설하는 중이다. 곡예는
한탄강은 큰 바위 하나를 일으켜 의적 임꺽정을 숨어 살게 하였다. 꺽정은 바위 동굴 속에서 한탄강 하류를 바라보며 서울을 도모하였다. 전곡 문산 장단 지나 임진과 합수하여 탄현에서 곧장 좌로 들어 한강을 치고 올라가면, 거기 백성의 나라가 눈물겹게 펼쳐져 있었으니, 백성의 왕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대부를 모조리 참살하여 광화문 높이 걸고자 한 꿈. 사대부 우두머리 피 흐르는 모가지를 들고 어전에 뛰어들어가 왕의 무릎 아래 통곡하려던 꿈. 그리하여 임꺽정의 한탄강은 지금도 흐르고 있느니.
누렇게 익은 벼이삭에 잠자리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앉아 고개 숙인 벼를 배운다 바람이 와서 흔들릴 때마다 배움을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