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 동화 같기도 하면서 제법 심오한 내용으로 어른들도 읽어 보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엔 책의 종류도 다양해 전문 성우들이 책을 녹음해 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 북이라는 게 있다. 얼마 전 집에 온 며느리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손녀에게 이 책을 오디오 북으로 들려주며 달래고 있는 것을 봤다. 이제 갓 4살 난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할까 궁금했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기한 음악소리와 앳된 어린 왕자의 목소리에 마냥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신통할 뿐이었다. 내 자식 어렸을 때보다 손자·손녀가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암튼 손녀 옆에서 무심코 듣고 있자니 마치 아이가 모든 어른들에게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고 훈계하는 것 같았다. 책 첫 머리부터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무심함과 아이의 친구를 부모의 소득과 집 크기로만 평가하는 어른들의 편협함을 꾸짖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말한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자신이 될 어른들을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고.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딘지 뜨끔함이 느껴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책 속의 ‘어
차를 타고 여주관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서 고구마, 인삼 등의 이삭을 줍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때론 동네 할머니들 몇몇이, 때론 아이를 동반한 여러 가족이 무리를 이루어 차까지 대놓고 이삭줍기에 열심이다. 저렇게 주워서 얼마나 할까 하는데 소쿠리며 자루에 든 양을 보니 열심인 이유도 알 것 같다. 농부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 얄미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쌀 한 톨, 고구마 하나라도 더 수확하기 위해 피, 땀 흘려가며 농사지은 땅에서 공으로 걷어가니 말이다. 그러나 농부는 불평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주인 몰래 이삭 주워간다는 민원은 듣지 못했다. 이미 수확이 끝난 농토는 나의 땅이 아니라는 그 어떤 약속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누구나 와서 고구마 몇 개쯤 주워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적당히 횡재(?)하고 가면 그만인 것이다.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여주에서는 도자기축제에 이어 여주오곡나루축제가 열린다. 쌀과 고구마 등 질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거래로 싸게 살 수 있고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는 시골장터와 재미있고 다양한 공연이 함께하는 도내에서 몇 안 되는 11월 축제다. 이번 오곡나루축제의
바쁜 와중에 모처럼 시간이 나거나,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난 가끔 영월루에 오른다. 23일 여주가 시로 출범을 하는데 잠시 생각을 정리할 겸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오후에도 영월루를 찾았다. 영월루는 같은 이름의 영월루 공원 정상에 있는 누정(樓亭)이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현재의 영월루는 원래 18세기 말 여주 관아의 정문으로 있었는데 1925년 관아가 현대식 건물로 지어지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자칫 땔감으로 쓰일 뻔한 아슬아슬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 이렇게 여주를 상징하는 훌륭한 문화재로 남아 있으니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혜안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룻밤 사이 그 더웠던 여름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가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선선한 아침저녁으로 많은 이들이 영월루를 오른다. 어떤 이는 운동 삼아, 어떤 이는 나처럼 바쁘고 힘든 일상을 잠시 잊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만큼 영월루는 지역민들에게 도심 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더욱이 영월루 정상은 일 년 365일 똑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없다. 심지어 아침과 저녁의 모습도 같지 않으니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