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2세기에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는 나라가 세세손손 영속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진은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다. 황제는 학문을 탄압하고 이에 저항하는 학자들을 불태워 죽이기까지 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만행을 저지른 탓이 크다. 폭압 통치는 진을 어느새 탐관오리로 가득 찬 부패왕조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충신들의 진언을 막은 철권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셈인데, 나라를 망친 자는 다름 아닌 환관 한 사람이었다. 순행 중 급사한 시황제의 죽음에 따른 왕위승계 과정에 주도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趙高)는 권력 찬탈을 위해 유언서의 조작도 서슴없이 벌인다. 시황제는 ‘큰아들 부소에게 장례를 주관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지만 조고는 황제가 믿고 맡긴 옥새를 틀어쥐고 승상 등과 짜고 태자를 바꿔치기한다. 시황제는 평소 모든 신하들이 자신 앞에서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조고도 끝까지 자신에게 충성할 것으로 굳게 믿었으나 배신을 당한 것이다. 시황제의 막내 아들 호해를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운 조고는 급기야 반란의 음모를 꾸민다. 어느 날 호해에게 선물로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신하들에게도 묻는다. 곧이곧대로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
1920년대 이후 식민지 하 우리 민족의 항일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운동으로 분화되었다. 반제, 반식민주의 투쟁에서 독립운동 세력의 자연스러운 사상적 발전이었다. 1920년대 말 좌우합작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된 것은 식민지 해방운동과정에서 민족모순의 해소가 계급모순에 앞선다는 민족통일전선 운동의 성과였다. 진보적 유학자였던 단재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다시 무정부주의자로 노선을 바꿔갔던 것도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 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정세가 불리해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은 중국 국민당 또는 공산당, 코민테른에 가담한 항일운동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이념 추구가 아니라 오로지 조국 해방 하나였다. 해방 이후 이들 세력은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한 목표를 향해 다시 뜻을 모았고 이 운동은 민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극단에 치우지지 않았던 송진우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 조소앙 김원봉 송진우 이여성 김병로 등 중간지대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대거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나섰던 것이 그 증거이다. 이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된 것은 미소 양국의 방해와 극단주의자인 이승만과 공산당 계열
국민대가 이미 심각한 표절 사실이 드러난 김건희 박사논문에 대한 시민사회의 검증 요구를 최종 거부했다. 숱한 허위 경력과 표절로 얼룩진 그녀는 논문 제목에 ‘멤버 yuji’라는 우스꽝스런 표현이 나올 정도로 어설픈 내용에 남의 논문과 블로그를 그대로 베낀 흔적들이 너무 많아 이미 국민들과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쯤 되면 대학이 논문을 취소하고 대학 본부가 공식 사과함이 마땅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달 초 국민대는 “논문 작성의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심각한 표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대학 교수회가 표절 여부의 심사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절차인가? 연구 진실성 여부는 즉시 검증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마저 부결되어 교수회는 망신을 자초했다. 대학은 언론, 건전한 야당과 함께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3대 축의 하나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시대에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해야 봉건과 전제가 발을 못 붙인다. 그런데 그 한 축인 대학이 이 정도로 타락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존재하는데, 진실을 지키려는 대학인의 기본 윤리가 눈에 안띈다. 상대가 최고 권력자
박정희는 남로당 군사담당 책임자였다. 한국전쟁 직전 발생한 여순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됐으나 곧바로 전향했다. 자신의 ‘세포’ 전원을 밀고해 조직을 일망타진한 공을 인정받아 군으로 복귀했다. 황국신민이 될 것임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그는 일제 패망으로 세상이 바뀌자 남로당 간부로 변신했고, 여순사건 후에는 다시 전향해 국군 장교로 둔갑했다. 그가 시현한 전향과 변절 과정은 일반의 상상을 절한다.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가 된 뒤에는 북에서 특사로 보낸 자신의 맏형 박상희의 절친 황태성까지 잡아 죽였다. 황은 그가 친형처럼 따르던 한 고향 출신의 ‘이념적 형님’이었다. 정신의학자들은 변절한 인간은 쉽게 저열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주지육림에 빠져드는 특성을 지닌다고 진단한다. 가치와 신념을 내던지고 변절할 경우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 부끄러운 과거를 잊으려고 했는지 모르나 박정희는 살아 있을 때 술을 엄청 마셔댔다. 심복의 총탄에 맞아 죽은 마지막 순간에도 여자들을 곁에 두고 술판을 벌였다. 우리는 뜻이 맞은 친구를 ‘동지’라고 부른다. 옳은 일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실천을 공유하는 동반자를 뜻하는 이 말이 아무한테나
정신의학자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상식이나 남의 불행에 공감을 못 하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때로 무자비한 행동으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이러한 소시오패스들이 권력과 그 주변에서 활개를 치는 듯하다. 조선업 하청 노동자 파업과 관련한 정부와 공기업 대우조선해양의 대응 방식은 참으로 몰상식할 정도로 소시오패스적이다. 5년 전 닥친 세계적 불황기에 이 회사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고통 분담에 동참해 임금을 무려 30%나 스스로 삭감했다. 이제 업황이 흑자로 전환되면서 노동자들은 약속한 대로 임금을 정상화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었고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파업을 벌였는데, 현 정부는 무력 진압을 공언했다. 약속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과연 그렇게 무리한 것인가? 대통령이 파업과 관련해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했다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참았다는 것인가? 임금 협상이 타결됐으나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분명하다. 하청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5년 전 1만3천원에서 현재 9500원으로 깎였으니 합의대로 4.5%를 올려준다 한들 주 48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소득은 대략 190만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전직 해상자위대 간부가 쏜 산탄총을 맞아 사망했다. 최장기 총리를 역임했다는 그의 죽음에 대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암살에 의한 것이든, 자연사이든 죽음에 사람이 조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베의 죽음은 한국인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를 보는 우리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국가로 만들려 했고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사죄한 아키히토 일왕을 비롯한 일본 지도자들의 공식 발언을 부인하면서 일본의 침략이 국제법상으로 불법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던 그였다.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강변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종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던 사실 역시 지어낸 근거 없는 것이라고 주장해 공분을 자아냈다. 또 이 같은 ‘거짓된 진실’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관련해서는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언급도 없이 마치 안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의 단순 살해범 정도로 폄하하기도 했다. 최근에 그는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한 보복 조처를 합리
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
한겨레신문은 창간 당시 재판관련 기사를 쓸 때 속보경쟁에 밀려 한쪽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기존 행태를 바꾸기로 했었다. 여론재판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설령 뒤늦은 보도라는 비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공판에 참여하는 원고와 피고 양측 주장을 모두 듣고 이를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그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속보경쟁이 난무하는 현재 언론 풍토에서 이는 지켜지지 못했다. 최근에 본 다큐영화 '그대가 조국'은 속보 경쟁에 휩싸인 언론의 치명적 약점을 파고든 정치 검찰의 언론 플레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마저 겁박하고 선별적으로 뽑아낸 진술을 기초로 언론에 흘리고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장을 만드는 법 기술자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양대 교수휴게실에 놓여 있던 PC 사용 위치를 가리키는 IP번호가 앞의 세 개 번호만 같고 뒷 번호는 상이함에도 같은 위치라고 강변하는 검찰 측 억지 주장도 소개됐다. 조 장관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PC를 집으로 가져가 딸의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전체 IP 번호가 일치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수사 검사가 자신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참고인들에
미국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을 반대하는 극단적 자유주의 이론에서 시작해 이제는 강대국 자본가의 패권적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세계 곳곳에서 큰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칠레에서는 1970년대 미국 자본 소유의 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추진하던 아옌데 정부가 미 CIA 주도의 군사쿠데타로 전복됐다. 냉전 종식 이후 이 이론은 한 단계 더 포악한 얼굴을 띠게 된다. 유통-제조업을 수직 계열화한 금융자본이 ‘최상위 포식자’가 되도록 돕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이들은 현지 정부를 세계화와 ‘작은 정부’라는 그럴 듯한 담론에 매혹되도록 해 가장 먼저 자본 이동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도록 한다. 이후 허술한 자국 화폐 시스템을 집중 공격해 현지 정부가 이를 이겨낼 수 없도록 한 다음 부도 위기로까지 몰아간 뒤 국가 인프라를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헐값에 취한다. 이 부도덕한 투기자본의 폭주는 20세기 전후 남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거치면서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기세가 다소 꺾였다. 이같은 ‘약탈’로 얼마나 많은 우리 알짜 기업들이 그들의 먹이감이 되었고, 또 얼마나
그제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여서 헷갈린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면서 행태는 이와 딴판이기 때문이다. 그 부정합은 국무위원 지명에서부터 드러났다. 한동훈 법무장관 지명이 대표적이다. 한 지명자는 2년전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작가 고발을 사주한 혐의를 받아 채널A 기자와 함께 조사를 받았다. 채널A의 자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두 사람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강요미수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현직 대검 감찰부장은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정치 검찰이 진상조사에 나선 대검의 감찰 행위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폭로했다. 한 지명자는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조차 거부함으로써 법망을 피했다. 한 지명자는 수사절차에 대한 비협조 전력만으로도 법무장관으로 자격 미달이다. 이런 사람을 정의수호와 법치의 수장에 지명한 처사부터 공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 것이다. 딸의 논문 표절과 ‘약탈저널’ 게재에서도 그 가족의 내로남불 행태는 아주 노골적이다. 딸과 아들을 자신이 병원장 등으로 재직 중이던 대학 의과대학에 편법 입학시킨 추한 행태가 드러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도 내로남불 행태에 있어 한 지명자와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