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면서 7월이 지나간다. 장마전선이 끝난 것은 아니고 비구름에 태풍까지, 멋대로 상륙하고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지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 잠시 TV이나 전화기는 꺼놓고 물안개 오르는 곳을 찾아가 보자. 오물 찌꺼기가 밀려간 작은 냇가는 산속 계곡의 물처럼 맑고 새소리는 또렷하다. 옥수수는 우쩍 자라 이삭이 패었고 나뭇잎은 푸르다. 해질녘 된장 넣은 통발을 논이나 강가에 놓고 아침에 나가면 작은 물고기들이 오글거린다. 이것들을 새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밖에 안되는 것이 팔딱이는 힘이 하도 세서 복날 더위를 가셔 줄 여름 보양식으로 지금이 적기다. 소금에 박박 문질러 씻어 호박이나 풋고추, 깻잎을 넣어 끓이면 세치혀의 입맛을 살린다. 새치네를 모르는 곳도 있고, 이것 저것 섞어서 끓인 것을 새치네 탕이라고도 하니 맛대로 멋대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삼복에 이것을 먹었다. 그냥 퉁쳐서 어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천렵이라고도 한다. 여럿이 강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뛰어다니며 물고기 몰이를 해서 잡는다. 강변에 가마를 걸고 장작불을 피워놓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가마 가득 끓여 놓고 늘어지게 하루를 즐긴다. 기타를 잘
밤새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비가 내렸다. 낮에도 앞을 가려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물이 불어나면서 교통이 통제되었다. 이북지역인 북쪽에도 28일 밤부터 7월 1일까지 개성과 강원도 황해남북도에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경보가 있었다.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일부지역에 위험 수위를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북이 동시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지만 사전 통지도 없이 황강댐의 방류는 불안한 예감을 넘어 괴씸한 생각마저 든다. 갑작스러운 폭우는 북쪽에서 최악의 재난상황이 된다. 도로와 철길이 파괴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눈앞에서 다 자란 농작물을 잃게 된다. 2020년에도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한 일부지역이 폭우로 피해를 입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최고지도자가 황해북도 은파군을 방문하면서 식량이 우선 공급되고, 빠른 수해복구를 지시했다. 폭우로 농경지와 도로, 철도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빗물로 인한 식수 오염으로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생겨나 주민들을 괴롭힌다. 북쪽의 장마는 6월 말부터 길게는 8월 초까지 이어지는데, 폭우가 내리면 좁은 강이 삽시에 불어나고 심하면 강뚝을 넘는다. 수면이 낮은 곳은 물난리
6·25전쟁의 그날이 오고 있다. 고요한 일요일의 평화를 깨었던 총성이 울린지도 반세기를 넘었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아직도 평화가 오지 않았다. 거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 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 폭탄, 탱크, 피난민, 이러한 것은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에는 기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쟁은 다시 반복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꼭 무력으로 싸운 전쟁의 경험만이 아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북쪽의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0년대의 이야기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무리지어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6·25전쟁에 대해 2011년 개봉된 영화 '고지전'에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싸우기 싫으면서 싸워야 했고, 살고 싶으면서도 맞서야 했던 것이 '고지전'이라 한다면, 북쪽 고향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죽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죽기내기로 살아내야 했다. 유일할 방법은 도강, 탈출하는 것이다. 6·25전쟁으로 분단이 되었고 그러므로 북쪽 사람들이 많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피난민들이 많이 왔으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시댁, 우리
장미가 아름다운 유월이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가열차게 달아올랐던 지방선거도 끝났다. 심판할 국민이 있고 공정한 규칙이 있다면 전쟁같은 선거라도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떠하리. 경험을 얻고 다시 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력을 사용해 동족끼리 죽고 죽이면서 파괴한 전쟁에 비기겠는가. 유월은 한갓 풀대의 생리보다도 못한 인간의 무모한 장난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온 달이다. 어떠한 규칙도,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기억은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힌다.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기억해야할 까. 뇌는 모든 기억을 담도록 하지 않는다. 적당히 망각하고 적당히 기억하면 될 텐데 잊지도 않고 찾아오는 유월이 있어 아름다운 장미조차 핏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유해를 발굴하여 산화된 뼛조각을 찾아 그날의 고통을 돌아보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시간은 평행이동을 한다. 가해자가 있어 피해자가 있고, 그래서 용서받고 싶은 사람과 용서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남북은 오랜 세월지난 지금도 동족이 피투성이 되도록 싸웠던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조국의 이름으로 ‘한국전쟁’, ‘조국해방전쟁’은 다른 기억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꽃들이 일시에 피어 무작위로 향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오월이요. 하얀 밥을 머리에 이고서 하늘을 우러르는 나무의 경건함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것도,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은 열매가 도톰히 자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오월이다.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하는 것은 여름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고, 울바자 사이로 삐어져 나온 꽃이 더욱 붉고 아름다운 것은 경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가 그득하다. 바람이 불어오면 양태머리를 땋아올린 꽃송이가 꿈결같이 밀려온다. 콧구멍으로 후~ 들어오고 후~ 나가고 잡힐 듯 말 듯, 그리고 수수꽃다리 향기는 얼마나 진했던가. 한 송이라도 가져오면 집안이 향기로 가득하다. 향기라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으니 스물한 살 청춘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맨발의 청춘이라 하지 않는가.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해서 추억조차 힘겹지만 그래도 20대만큼은 빛나게 반짝인 때이다. 아무도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 그것은 후각 이 지각을 깨운 덕분이다. 아카시아 꽃, 수수꽃다리 향기너머
남쪽의 오월은 가정의 달로 분주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 부모자식간 사랑을 확인하는 달이다. 양로원을 찾아가 꽃을 달아준다거나 봉사활동으로 평시에는 몰랐던 나이 듦을 생각해본다. 스승의 날도 있고 부처님 오신 날도 오월에 있다.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간다. 즐거이 받는 분도 있고 부담스러워하는 스승도 있다. 석가 탄신일에는 아름다운 색상의 풍등이 거리에 가득히 달린다. 오월에는 기념일이 많아 지출해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북쪽에도 어린이날과 유사한 조선소년단 창립일이 있다. 조선소년단은 초등학교 2학년이면 선서를 통해 가입하는 정치조직이다. 어버이날은 없으나 어머니날이 있다. 어머니날이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쪽에서는 출산을 장려하고 제한하기도 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높게 본다. 어버이는 부모보다는 수령이라는 의미가 크다. 모든 것이 수령 영도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교육되므로 남쪽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북쪽에도 스승의 날이 있을까. 스승의 날은 없어도 스승에 대한 노래는 있다. 남쪽에서 스승의 날과 유사하게 교육절을 기념한다. 이날 학생과 제자가 만나 스승에게 감사를 전한다. 북쪽에서
봄은 꽃의 축제이다. 약속하듯 일시에 피었다가 밤새 우수수 지고, 나뭇가지에는 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난다. 죽고 사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계절, 4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달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이날에 감사예배를 드리고 계란이나 떡을 나눈다. 고향 북쪽은 어떠한가. 남쪽의 봄과는 의미가 다르다. 꽃의 축제가 아니라 수령의 탄생을 기념하는 4월의 봄 축제가 열린다. 모든 행사를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에 맞추어 진행한다. 국외 예술단을 초청해 예술축전 행사도 아주 크게 한다. 부모님 생신은 잊고 있어도 절대 잊어서는 아니되는 수령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평양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생필품이 부족한 시기 이날에 맞추어 교복이나 당과류를 공급받으면 수령의 은덕이라고 칭송했다. 지방도 이날에는 거리를 청결하게하고 울긋불긋 꽃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국가는 곧 수령이며 수령이 태어난 날을 ‘태양절’이라 한다. 그러니 4월은 곧 수령의 봄이며 죽은 자를 기억하고 부활하고자하는 봄이다. 전문가들은 이날에 맞추어 북쪽에서 미사일을 쏠 것이라 예측한다. 요즘은 참으로 걱정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인이 희생되고 수많은 피난민 행렬을 볼 때면 고향을
4월 5일은 청명(寒食)으로 고향 북쪽에서는 공휴일이다. 산에 산에 꽃이 피는 시기이다. 남쪽에서는 벚꽃이 한창이다. 이 시기 북쪽 고향에서는 조상의 묘부터 살핀다. 묘소 주변을 정돈하거나 혹은 묏자리가 좋지 않거나 먼 거리 오가기가 불편하면 청명날에 맞추어 이장(移葬)을 한다. 떡이며 부침이며 과일 같은 구하기 힘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산으로 오른다. 이러한 제례의식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산에 갈 이유가 없는, 조상의 묘가 없는 사람들이다. 북쪽 고향집도 조상묘가 없어 청명날이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제상을 차려놓고 집안에서 제사를 한다. 할아버지는 중국 장춘 어디에 묻혔고, 기일(忌日)도 모르는 장손인 아버지는 막연하게 비슷한 날을 추정했다. 생전에 좋아했다는 담배를 상위에 놓으면 신기하게도 사람이 흡인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타들어갔다. 어머니는 제상 차리는 것을 거들면서도 못마땅해했다. 사진도 없는 제상에서 부모님들은 눈물을 보였다. 나에게는 고향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타향이고 두만강 건너 정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슬픈 것도 딱히 기쁜 것도 몰랐던 청명(寒食
요즘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토론이 뜨겁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이슈의 논란에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성차별, 성폭행 등을 이유로 들면서 대안도 없이 폐지하려 한다고 날 선 토론을 했다. 여성으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전자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젠더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활동들이 소명을 다했다면 어떤 시대적 소명으로 여성들을 불러낼 것인가. 여성의 사회적 참여문제, 현존한 성폭력, 성추행, 인구절벽 등 여성문제가 정치의 쟁점이 된다. 여성이 무엇이기에 정치적인 논쟁이 되는 가? 인류의 보존에는 여성역할이 크다. 냉동된 정자가 아무리 많아도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는 이 세상에 올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신체구조상 강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억압했다. 파괴적인 남성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보호본능이 강한 여성들은 그것을 방지한다. 그래서 가산점을 주고서라도 부처에 여성비율을 높이려는 이유이다. 밥상도 같이 못했던 남녀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고 평등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한부모가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
神은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할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창조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을 주었다. 꽃이라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했으나 알맞게 불러 줌으로써 무엇이 된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 있고 이름을 불러줌으로 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생물학적 성(性)과 사회학적 성(性)으로 구분하면 젠더(gender), 섹스(sex)가 된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불러내고 응답함으로써 완전한 무엇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이 깨지면 갈등이 생기고 권력과 힘에 의한 폭력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은 꽃 인가?라고 물으면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말할 것이다. 남쪽사람은 ‘빵과 장미’ 아니면 다른 무엇일 것이다. 북쪽출신인 나는 노랫말 가사를 생각한다.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남쪽남자는 ‘너 나와 친구할래, 아니면 남자할래’고 물음으로써 자신이 남자임을 확인시킨다. 북쪽남자는 무엇이라고 할까. ‘너 나와 동무할래 아니면 오빠할래’고 하여 자신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근접시킨다. 연애하는 과정에도 오빠가 아니라 동무라고 하기도 한다. 동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고 동무는 친구이다. 동지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동무에서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