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코로나 때문에 줌으로 쌍방향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미래 교실에 온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 앉아 있고, 나는 교실에서 모니터를 보는 상황이 어렸을 때 보던 과학 잡지에 나올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변화의 물결이 가장 늦게 찾아오는 보수적인 공간도 코로나 앞에선 변하지 않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반적인 쌍방향 수업에서 변형된 모습으로는 교실에 교사와 소수의 학생이 있고 다수는 집에서 수업을 듣는 상황이 있다. 긴급돌봄 학생이 생기면 이렇게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학생이 몇 명 교실에 앉아있지만 온라인 수업 중심이라 평소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수업을 설명하고, 발표하며, 조별 활동을 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물리적 공간이 어디인지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최근에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할 일이 생겼다. 우리반 친구들 몇 명의 동거인이 자가격리하게 되어서 그 학생들도 등교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학생 본인이 확진이거나, 유증상으로 인한 결석이라 수업을 못들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학생과 자주 전화하면서 몸 상태가 어떤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교육활동이 끝이 났다. 이번엔 본인은 몹시 건강한데
수업시간에 가끔 아이들에게 공부가 재밌는지를 묻곤 한다. 그러면 우리 반 스물 한 명의 아이 중 세네 명 남짓한 정도는 공부가 재밌다고 말한다. 퍼센티지로 따지면 20%가 조금 안 되는 수치다. 공부에 재미가 없는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는 거라서 하거나, 괴로워도 부모님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 이런 상황이니 수업 시간에 교실 분위기가 절간처럼 삭막해지는 게 약간은 이해가 간다. 언젠가 반 친구들에게 모두가 공부를 꼭 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라서 예전에 알던 정답이 미래에도 맞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과 어른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 예를 들면 공부를 잘해야 좋은 직업을 얻고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 게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부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집이나 학교에서 대놓고 혹은 은연중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배워왔는데 다른 소리를 하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며칠이 지나고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엄마에게 공부 꼭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대체로 보는 걸 좋아하는데 K리그 팀의 서포터스를 한 적이 있고 국가대표 경기는 챙겨서 보는 편이다. 관람하는 것과 다르게 직접 공을 찬 경험은 초등학교 때 동네 꼬마들하고 뛴 게 마지막이다. 그때는 샌들 신고 축구하다가 발톱이 빠져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같이 공으로 운동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고 이후로 공을 차면서 달려 본 적이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관심사를 수업에 투영할 수 있다는 거다. 초등 교육과정은 세상살이의 거의 모든 과정을 커버하고 있어서 교과서 어딘가를 뒤적이면 가르치고 싶은 내용이 높은 확률로 들어있다. 그것도 아니면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교사 재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과목을 이용할 수도 있다. 수업의 내용이 편협하거나, 불법적이거나, 민주시민을 양성하는데 저해되지 않는다면 다양한 것들을 수업시간에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교사의 장점을 한껏 이용해서 아이들이 자주 축구를 접하게 만들곤 했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두 그룹으로 팀을 나눈 뒤 나는 심판을 본다. 남자아이들만 따라 나올 것 같지만 여자아이들도 함께 나온다. 초등학생까지는 교사가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복싱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다. 기초 체력 향상을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몇 달째 하다 보니 다들 진심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은 진심을 소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이 장비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와서는 운동할 때 도움이 되는 이런저런 보조 기구를 사게 되었다. 그때 구입한 물건 중 하나가 운동 내역을 기록할 수 있는 스마트 워치였다. 스마트 워치는 운동하면서 칼로리를 얼마나 소비했는지, 현재 심박수가 어떤지, 야외에서 운동하면 GPS로 경로를 기록해주는 똑똑한 친구다. 보통 운동을 마치고 오늘은 몇 칼로리를 소비했는지 보면서 뿌듯해했는데 어느 날 한참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헉헉거리던 도중에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의 화면에는 여러 가지 숫자들이 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하트 모양 옆의 숫자가 165를 찍고 있는 게 보였다. 친구들 모두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어서 현재 심박수를 물었더니 친구 A는 심박수가 175, 친구 B는 110대라고 했다. 겉으로는 다들 비슷하게 열심히 운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는 건 A였다. B는 자신의 심박수에 머쓱해하며 더 열심히 하겠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가 족히 수백 통은 넘어간다. 내가 인기 많은 교사여서 편지를 받는 건 아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작년에 담임했던 아이들이 자기 교실에서 스승의 날 행사로 편지를 써서 교실로 가져온다. 학년이 끝날 때쯤에 편지를 주고 떠나는 아이들도 가끔 있다. 교사를 하다 보면 연례행사처럼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에는 보통 공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나, 올 한 해 재밌었다는 말이 적혀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하고, 말을 잘 안 들어서 죄송하다, 그동안 말썽꾸러기들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구구절절 쓰여 있을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지금 괴로운 일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올 때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게 대동소이하니까 편지의 내용도 비슷비슷해진다. 나를 잊지 않고 편지를 적어서 건네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개학을 맞이해서 출근했는데 교무실에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보낸 이는 올해 우리 반 친구 A였다. 급한 일이었으면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이 왔을 텐데 그게 아닌 걸 보니 천천히 확인해도 될 내용인 듯싶었다. 편지 봉투에 우표까지 붙여서 온 편지를 보고 약간은 두근거리기
코로나 때문에 1년 반 동안 거의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운동장 곳곳에 초록색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남자아이 하나가 창밖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풀을 조금만 더 자라게 두면 천연 잔디구장이 될 거 같다고 좋아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수풀처럼 변해가는 운동장을 보다 못해 가끔 직접 잡초 제거를 하셨지만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승자는 이름 모를 잡초였다. 풀들은 여름 햇볕을 받고 더 맹렬하게 자라고 있다. 운동장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새로 지은 건물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작게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나마 1년 뒤에 별관이 신설되면서 운동장 크기가 더 줄어들었다. 그곳에서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공을 차며 놀았다. 물론 그렇게 놀았던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내가 유년 시절 내내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려 놀았다. 나는 언제나 놀이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과 놀 때도 있었지만 남자아이들이 하는 축구와 야구 같은 운동을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한 여자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올림픽 한 경기, 한 경기를 과몰입 상태로 보다가 인상 깊은 선수를 발견했다. 육상 높이뛰기에서 전체 4위를 한 우상혁 선수였다. 한국 선수가 높이 뛰기 결선에 진출한 덕분에 오래간만에 육상 경기를 실시간으로 봤다. 우상혁 선수는 경기 초반 굳어 있던 표정에서 벗어나 시종일관 웃으면서 하늘을 날았고, 2m 35cm를 넘어 개인 최고 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2m 39cm에 도전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새로운 기록을 세우지 못해 메달에서 멀어졌음에도 활짝 웃으며 ‘괜찮아’를 외치는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 우상혁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후회 없는 경기를 했으며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상혁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수영 황선우 선수도 메달권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기록에 만족한다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양궁 8강 경기에서 탈락한 김우진 선수는 인생이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느냐며 웃었다. 사격에서 은메달을 딴 김민정 선수도 비슷하게 인터뷰를 했다. 결승 슛오프가 너무 재밌었고 아직 어리니까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죄인 아닌 죄인처럼 인터뷰를 했다. 4년 동안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체에나 날씨가 적혀 있었다. 앞일을 걱정했다면 그날그날 일기는 안 쓰더라도 날씨는 적어놓았을 텐데 그 정도의 계획조차 세우지 않을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학교 가서 친구의 일기를 보고 날씨를 베끼기로 하고 개학 전날 밤까지 열심히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았다. 교사가 되고 보니 방학 숙제는 담임교사 재량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운동장 기억의 대부분은 교장 선생님이 구령대 위에 서서 훈화 말씀하시던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말의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훈화 말씀 시간은 곧 흙장난을 치는 시간이었다. 한참 서 있으면 곧 지루해져서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에게 흙을 튀겼다.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에는 손으로 흙을 모아 쌓거나 지나가던 벌레를 장난감 삼아 놀았던 것만 생생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거 같아 고개를 들어 구령대를 쳐다보면 아직도 누군가가 일장연설 중이었다. 구령대는 늘 선생님들 것이었다. 운동회 때 유일하게 그늘이 생기는 구령대 아래에는 대회 본부석이 차려졌다. 우리는 옆쪽에 위치한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다. 운동회를 시작하는 타이밍엔 스탠드에도 그늘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움직이면 여지없이 직사광선이 내리 꽂혔다. 그때는 학생들이 햇빛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해서 한껏 찌푸린 채 손 그늘과 손부채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반전됐다. 운동회 때 학생들을 위해 각 스탠드마다 천막을 쳐서 햇빛 가리개를 만들어 주는 건 기본이고, 교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구령대까
우리 반 아이들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매일 등교한다. 교육부에서 2학기부터 전면 등교를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학교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우리 학교는 한 달 먼저 등교를 시작하기로 했다. 1년 4개월 만에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아이들을 매일 보려나 기대하던 찰나에 옆 학교에서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었다. 다시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다행스럽게 위기가 넘어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언제나 매일 학교에 오고 싶어 했다. 거리 두기 때문에 교실에서 별다르게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학교가 재밌냐고 묻자, “뭘 하든 학교에 가는 게 낫죠.”라고 말하곤 했었다. 교육부에서 실시한 등교 관련 설문조사를 봐도 고등학생은 등교를 원하는 학생이 26퍼센트에 머무르는 반면 초등학생들은 열 명 중 일곱 명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역사의 기록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마지막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수업할까 고민하다가 교실에서 하지 못했던 음식 만들기를 했다. 6학년 실과에는 한 그릇 요리를 만드는 단원이 7차시 분량 정도 나온다. 등교했을 때 실습을 하기가 어려워서 콘텐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