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늘 다니던 뒤 산에는 겨울을 이겨낸 연분홍 진달래가 망울을 터치며 가득히 피었다. 어린 새싹들이 뾰족 뾰족 나오고 맛을 살려주는 봄나물이 자라고 있다. 봄에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달래를 캐고 쑥을 뜯어오던 시절이 있어 더 애틋하다. ‘산에 산에 피는 꽃 저만치 혼자 피는 꽃’이라는 김소월의 시를 마음에 담는데 어제 밤에 내린 비는 간신히 피워낸 꽃잎을 우수수 떨구어 ‘산에는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의 구절을 다시 새겨본다. 오늘에 왔다가 내일은 가버리는 봄이라도 ‘꽃이 좋아 산에 사노라네’를 읽으며 작년과 다른 봄의 계절을, 고향과 닮아있는 진달래를 생각한다. 김소월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의 진달래는 얼마나 아름답기에 시간을 넘어 지금도 읽히고 있을 가.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으로 서해안에 위치하여 평안남북도, 자강도 일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평안도 지역은 열두삼천리벌을 비롯한 넒은 벌들이 있고 압록강, 대동강, 청천강 등 긴 강들이 서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김소월의 시로 인해 동해안의 중부에 살았던 나는 서해안의 평안도 진달래가 더 고을거라고 상상한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운 시기가 아니면 가볼
요즘 ‘미나리’영화가 인기몰이다. 지극히 평범한 이 영화는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비교되는 인기몰이를 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코로나로 텅 빈 영화관을 독차지하고 ‘미나리’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이삭 감독이 ‘미나리’를 호명하여 어떻게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를 스크린을 통해 보았다. ‘네 얼굴은 왜 그렇게 납작하니?’ 데이빗(엘런 김)에게 건네오는 낮선 곳에서 친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의 화투를 배우고 가지런히 칫솔을 하며 서로를 닮아가는 척박하지만 인간미 있는 그곳,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울컥했던 것은 모니카(한예리)가 한국에서 온 어머니를 눈물로 포옹하는 장면이다. 가족의 재회는 얼마나 감동적인 설정인가? 그리고 어머니가 꺼내 놓는 멸치를 받고 또다시 울컥해하는 모니카(한예리), 고향의 언어는 잊혀진 것을 기억하게 하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미나리의 약효인지 손자의 병은 기적적으로 호전되고 대신 할머니가 병을 얻고 그의 실수로 그동안 일궈온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손자의 안내를 받으며 집으로 되돌아가는 할머니, 그곳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
식해(食醢)와 식혜(食醯)는 같은 것인가? 사전을 뒤져보니 식해의 醢(육장해)는 숙성시킨 음식으로 젓갈 또는 肉醬이라고 되어 있다. 식혜는 식초(食醋)라는 의미도 있고 술이나 알콜 성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통음료로 분류된다. 즉 남쪽에서는 식해와 식혜를 구분하고 있다. 북쪽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통칭 식혜(Sikhye)라고 한다. 북에서의 식혜는 생선을 기본 재료로 발효시킨 것이다. 음료인 식혜는 흰쌀밥 또는 찹쌀밥을 길금에 우려낸 물에 넣고 삭혀낸 것이다. 초(醋)로 발효되고 삭혀지는 화학적 과정은 같으나 식해와 식혜는 다른 것이다. 조선중기의 기록에도 생선을 절인 젓갈을 혜(醯)라고 했으니 식혜는 명태식혜, 가재미식혜 등이다. 식해와 식혜가 다른 것은 食醯(식혜)는 북쪽 지역인 함경도 특산으로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나 가재미 등을 식재료로 사용하면서 식혜라는 언어로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에 비해 남쪽은 쌀이 많이 생산되니 음료인 식혜로 구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함경도 특산인 가자미식혜는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는 고향음식이다. 강원도 속초에 함경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바이 마을이 있다. 잠시 머물다 돌아갈거라 생각했던 그들은 고향에 가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건국신화를 보면 옛 조상들은 맵고도 따듯한 성질의 채소를 좋아한 듯하다. 배추와 무가 우리나라로 들어와 고추와 젓갈을 넣어 김치라는 형태를 가지기 전 맵고도 알싸한 맛과 독특한 향을 내는 갓 종류인 이것은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성담수(成聃壽 자는 耳叟)에게 보내며 지은 시 ‘산갓김치를 이수(耳叟)에게 보내다’에서 맛과 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날로 씹으니 어찌나 매운지/산방에서 전하는 묘법에 따라/끊은 물에 데쳐 김치를 만드니/금시 기특한 향내를 발 하네/한 번 맛보자 눈썹을 찡그리고/두 번 씹자 눈물이 글썽/맵고도 달콤한 그 맛은/계피와 생강을 깔보니/산짐승, 물고기의 맛/온갖 진미가 겨를 수 없네...”로 표현하고 있다. 고기에 후추가 필요해 대 항해를 했던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 신토불이 산갓은 맵고도 기이한 향으로 오감을 자극하는 향신료를 대신했다. 그러면 산갓과 함경도 영채는 무엇이 다른가? 북에서 출판한 백과사전에 보면 “함경도 특산인 영채김치는 영갈채갓김치, 혹은 산갓김치라고 불렀다” 담그는 방법에 대해 “해마다 가을이 오면 산갓의 잎을 따서 소금에
삼수갑산은 량강도 혜산의 서쪽과 동쪽에 각각 위치한다. 압록강, 장진강, 허천강의 세 갈래 물줄기 사이에 있다고 해서 삼수(三水)이고 혜산에서 140리(55km) 들어가면 갑옷 같은 산이 많다고 하여 갑산(甲山)이다. 고려말기 갑주만호부(甲州蔓戶府)가 설치되었는데 1413년 갑산군으로 개편하면서 처음으로 개척한다는 의미의 ‘甲’를 썼다고도 한다. 유배지로 유명한 이곳에 허난설헌은 오빠 허봉에게 ‘갑산으로 귀양 가는 오라버니께’라는 시를 남겼고 김소월은 ‘삼수갑산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메뇨 오고나니 기험(寄險)하다 아하 물도 설고 산 첩첩이라’는 시를 썼다. 또한 시대의 한 획을 그었다는 시인 백석은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에서 살았다지 않는가. 산간오지 삼수갑산에서 백석은 ‘갓 나물’이라는 시를 썼다. 그렇게 멀고 먼 길을 동갑내기 친구의 고향이라고 가본 적 있다. 함흥에서 길주, 길주에서 혜산까지 왔으나 아직도 백 여리길이 아득한데 다행이도 그곳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어 얻어 타고 그러고도 목적지 도착하지 못해 생전 처음 보는 나귀를 타고 갔다. 친구가 말이라고 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말보다는 허리가 낮고 덩치도 작다. 그때 함흥에서 사과를 무겁게 지고 갔는데
동해바다를 따라 올라가며 흥남, 신포, 청진, 나진은 예전부터 유명한 명태어장이었다. 대륙의 찬 공기와 해양의 더운 공기가 마주하는 이곳은 명태의 생존에 적합하여 크기도 적당하고 맛도 좋아서 러시아 명태에 비기지 못한다. 가장 많이 잡힌 때가 1970년대로 새까맣게 밀려오는 명태떼의 길이가 무려 3천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해안으로 밀려와 산란을 하고 2월이나 3월이면 다시 깊은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당시 그 많은 명태를 잡아들이고 저장하고 가공하고 건조하는데 많은 기술이 필요해 명태밸 따는 기계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명태알은 포장되어 일본으로 수출했다. 명태는 산간 오지까지 실려와 집집이 할당으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동해바다를 지나다보면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집집이 명태덕대를 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싫도록 먹었던 명태가 사라진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지역적 환경으로 함경도 음식은 명태로 가공한 식품인 명태식혜, 명태김치, 명태깍두기, 명란젓, 창란젓 등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함경도 명태깍두기는 가을무로 만든다. 김치가 반년 식량이라면 무는 그에 못지않다. 김치를 하
쩡~ 하고 가슴이 뚫리는 그것이 생각난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 소랭이를 옆구리에 끼고 집 앞에 파묻은 김치움으로 간다. 땅속에 묻은 김칫독은 영하 30˚에 꽁꽁 얼어있다. 봉인된 김칫독을 열면 두툼한 얼움이 하얗게 깔려있다. 조심히 얼음을 비껴내면 세 번의 발효과정을 거친 김치가 빨간 국물 속에 얌전히 누워있다. 신비감을 주는 이 것은 몇 달의 숙성 과정을 거쳐 새콤하고도 달콤한 향기를 낸다. 김치는 김칫독의 아래로 내려갈 수 록 더 맛있다. 국자로 얼음이 버석거리는 김치와 국물을 푹 퍼 담는다. 상위에 오른 김치는 손으로 죽죽 찢어 밥 위에 얹어 먹었다. 배추 사이 사이 넣은 명태는 발효의 작용으로 이미 명태가 아닌 김치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 앞집 뒤집 오가며 뉘집 김치가 맛있나 채점하면서 먹었던 쩡~ 한 맛의 함경도 김치. 고향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춥다. 함경도 김치는 동해바다의 특산인 명태를 넣고 김장을 한다. 지금은 어획량이 줄었지만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명태가 많이 잡히는 어장이었다. 그래서 함경도 김치라 함은 명태김치를 말한다. 김치의 종류도 통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백김치 등 다양하다. 배추는 비료가 부족해서 남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