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농진청 발족 과학의 시작
△‘한국농업 100년’ 그 발자취를 따라 = 올해는 1906년 수원에 ‘농촌진흥청’의 전신인 ‘권업모범장’을 설치하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농림학교가 농상공학교에서 분리 독립돼 1907년 수원 서둔동에 교사를 신축, 이전한한 뒤 한국농업이 과학적 토대를 놓은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쌀 자급을 이룬 통일벼와 식탁위의 기적을 부른 백색혁명, 수입농산물 개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농업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다만 일제기와 6.25전쟁을 치르며 농업이 수탈대상으로 몰락하던 시절을 지나 1962년 ‘농촌진흥청’이 발족되면서 농작물 품질품위향상과 전문농업인력육성에 경주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농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녹색혁명을 이룩한 1960년대에서 70년대 까지는 국가적 과업인 식량자급 달성에 주력, 그 결과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농업발전에 발판을 이룩했다. 그리고 농업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1980년대 비닐하우스 원예가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백색혁명’ 혁명이 본격화돼 우리나라 들판을 하얗게 물들였다.
이어 90년대 초 ‘신농정’, 첨단기술농업, 수출농업에 이어 유리온실에 이르기까지 자동화-규격화-생력화로 전진농업의 발판이 마련됐다.
WHO체제와 DDA, FTA협상 등 국제교역이 활발해진 2000년대는 친환경 유기농법을 전면으로 내세워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안고 유해물질 전반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체제에 돌입,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성과를 이뤘다.
△한국 농업환경을 바꾼 ‘백색혁명’ = 꽁꽁 얼은 겨울에 상추가 식탁에 올라오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 새콤 달콤 밀감을 먹는 기적은 우리나라 농정사상 가장 획기적인 혁명으로 평가된다. 이른바 비닐하우스의 ‘백색혁명’.
비닐하우스의 시작은 1920년경 창틀에 기름종이를 발라 조립한 시설에서 오이, 호박 등을 재배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1970년대 들어 도시근교를 중심으로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가 조성되면서 시작됐다. 신선채소가 식탁을 주도하던 1980년대부터 비닐하우스 원예가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1970년의 736ha에서 1980년에 7,322ha로 10배 확대, ‘백색혁명’이 본격화됐다.
백색혁명은 유리온실 등 첨단 재배기술을 몰고와 토마토, 고추, 가지, 오이 등의 과채류와 화훼류 등 재배 폭이 확대된다.
수확물의 신선도유지, 등급규격화를 위한 저온저장과 저온수송, 선별시설의 표준화 등을 통해 수출농산물의 품질향상을 획득, 국제경쟁력이 향상돼 2005년 5,214만불로 1992년에 비해 20배 이상 증가하는 등 수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보릿고개에서 웰빙까지 = 우리나라 식생활은 ‘보릿고개’를 넘어 ‘혼식-분식 장려기’를 지나 ‘자급자족시대’를 거쳐 ‘웰빙-안전-기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진화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던 먹거리 개념에서 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으로 해석되는 21세기까지 변화해 온 것이다.
1960년대 식량난 해결을 목적으로 보리혼식과 분식을 권고했고, 70년대에는 즉석식품인스턴트식품이 식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으며 80년대 고혈압, 당뇨병, 비만증 같은 성인병 발병률이 증가됨에 따라 서구식 식습관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가공식품ㆍ패스트푸드 등의 해(害)에 대한 논란도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식생활 화두는 ‘웰빙’이다.
국내 친환경농업은 1990년대 초반까지 민간단체 위주로 추진되어 오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나서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전체농산물 중 친환경농산물의 비율을 2010년까지 10% 수준으로 높이고, 2013년까지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을 각각 2003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전체 농산물 중 친환경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05년 말 기준으로 약 4%이며 매년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른 친환경농산물 시장규모는 유통구조다양화로 인해 05년 말 기준 7,000억 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는 그 중요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미래성장 프로잭트 ‘품질이 경쟁력’ = 고품질로 승부한다 ‘탑 라이스’. 국제사회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쌀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04년 말 쌀 협상이 마무리된 이후, 2006년 처음으로 수입된 밥상용 쌀은 2005년도 의무수입물량 2만1천5백 톤이었으며, 올 하반기에도 2만5천 톤이 추가로 수입될 예정이다.
이제 남은 일은 품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 농진청에서는 수입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에서 가공, 유통까지고품질로 관리하는 ‘탑라이스 프로젝트’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잭트는 농진청에서 이제까지 개발해온 모든 최고의 기술을 집중 투입해 쌀의 고품질화를 구현 새추청, 일미 등 8품종을 전국 19개 단지에서 친환경 재배, 최고급 쌀을 생산토록 하고 있다. 앞으로도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의 쌀 품질관리시스템 확립을 위해 생산이력제 실시, 품종혼입 방지, RPC 운영기술 개선 등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노력으로 우리 쌀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기 위해 꾸준한 연구와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산 돼지가 전 세계의 빈혈을 치료하는 날이 온다.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는 가축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체에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형질전환 가축 생산연구를 추진하면서 1998년에 세계 최초로 빈혈치료제인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를 생산하는 '형질전환돼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또한 2003년에는 혈전증 치료제인 TPA(Tissue Plasminogen Activator)를 생산하는 형질전환 돼지를, 이듬해인 2004년에는 혈우병 치료제인 본 빌리브란트 인자(VWF; Von Willibrand Factor)를 만들어 내는 형질전환 돼지를 선보임으로써 한국의 형질전환 가축 생산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현재, 인간의 빈혈치료제를 생산하는 형질전환돼지의 경우 특허청과 형질전환돼지의 국유특허에 관한 전용실시권을 산업체에 이관해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곽창길 정책홍보담당관은 “국제경쟁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쟁에서 선점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개발로 품질에서 승부해야 한다”며 “농업생산력 증진과 농업후계인력 육성을 병행해 풍요로운 농촌만들기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강석인기자 ksi817@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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