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도란테스의 오로브로이’

2021.08.02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8

 

 

‘도둑을 만날 수도 있고 납치될 수도 있어요’

 

20여 년 전, 배낭여행 중 들른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앞. 궁전 건너 보이는 하얀 동굴같은 집들이 궁금해 묻는 내게 현지인은 집시마을 사크라몬떼라며 위험을 경고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에 앞서 결국 마을로 들어갔다. 반쯤 문 연 집이 보여 노크했더니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나온다. 한 세 평 될까 싶은 흙바닥에 예닐곱 살 여자아이들 서너 명이 엉켜 놀고 있었다. 누더기 같은 옷차림도 반 벗은 채였다. 인기척에 돌아보는 아이들 얼굴에 잠깐 숨이 멎었다. 치렁치렁 긴 검은 머리, 커다랗고 검은 눈, 붉은 입술이 뿜어내는 매혹이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별점과 도둑질을 일삼고 바이올린 하나로 집단가무를 즐기며 유랑하던 집시의 피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 것은 여행에서 돌아와 들은 한 곡의 음악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플라멩코 피아니스트인 다비드 페냐 도란테스(David Pena Dorantes)의 앨범 속 오로브로이(Orobroy).

 

아이들을 만났을 때처럼 잠깐 숨이 멎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상승해가는 피아노 음이 판타지의 세계로 이끄는 듯하더니 집시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절규 같은!) 도로 속세로 끌고 와 혼을 뺀다. 생경하고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악상이 가능할까! ’ ‘작곡자는 천재일 거야! ’

 

작곡자 도란테스는 할머니, 아버지, 삼촌 모두 플라멩코 뮤지션이었던 플라멩코 명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전통에 머물지 않고 플라멩코 상징 악기인 기타를 피아노로 바꾸고 클래식, 재즈, 록을 접목시키는 등 플라멩코의 새 역사를 써나갔다. 천년 유랑, 수난의 삶 속에서 고통을 잊기 위해 만든 집시음악 플라멩코의 정신은 한 서린 가사를 통해 지켰다. 그가 만든 새로운 플라멩코 중 오로브로이는 스페인은 물론 세계인의 경탄과 사랑을 받은 대히트곡. 오로브로이의 뜻은 집시 언어 로마니로 ‘생각했다’라는 뜻인데 노래 가사는 집시의 삶처럼 뜨겁고 강렬하다. 일부분을 소개해 본다.

 

내 피를 흐르는 오래된 목소리/ 과거의 기억으로 울고 노래하지만/ 내 영혼은 향기를 품습니다/이 세상의 고통 대신 장미의 씨앗을 선사해준/ 신을 나는 느낍니다.

 

삶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와 심장에서 흘러나온 선율은 뜻은 몰라도 국경을 넘고 마음 벽을 넘는다. 문명 이전의 원시성, 야생성을 품은 목소리가 각박한 삶을 위로하고 치유한다.

집시 음악이 대표적인 월드뮤직으로 사랑받는 이유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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