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너무 늦게 만난 음악, 야니의 프렐류드

2021.11.08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19

 

지금 내 손에 들려 잠 못 들게 하는 책은 ‘세 여자’다. 작가 조선희는 잊혀진 여성독립투사 허정숙, 고명자, 주세죽 세 여자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되살려 놓았다. 2017년 나온 책을 읽은 이들은 ‘3년 전 화제가 됐을 때 안 읽고 왜 이제야?’ 하고 물을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답이 오늘 글의 주제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의 전작들을 제목만 보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 고 지레짐작, 독서목록에서 제외시켰었다. 또 그 기억으로 ‘세 여자’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내 독서모임 다음 책이 ‘세 여자’로 선정돼 내 의지 없이 잡게 된 것이다.

 

소설은 나를 단박 100년 전, 역사의 격변 속에 떨구었고 세 여자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회오리에 휘몰리게 했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었다. 근거 부실한 순간 감정의 선입견을 반성한다.

 

그 같은 선입견으로 놓친 음악이 얼마나 많았을까. 뒤늦게 듣기 시작한 그리스 출신 미국 작곡가 야니(본명 야니스 흐리소말리스 Yannis Hrysomallis)와의 만남도 그랬다.

 

음악광 친구와 대화하다 ‘왜 야니 음악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들었다. 

‘전자음악 쓰는 뉴에이지 음악가잖아. 몇 곡 들어봤는데 가벼워서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

라는 내 대답에 야니 광팬인 친구의 장광설이 터졌다.

 

‘야니 음악은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변화무쌍, 예측불허야. 이력도 독특하지. 수영선수였었고 심리학도였는데 음악에 빠져 독학으로 피아니스트, 작곡가가 됐어. 세상을 돌면서 만난 민속 음악가, 민속 악기들을 자기 음악에 녹여 작곡을 해왔어. 그게 야니만의 아주 독특한 컬러를 만들어냈지‘

 

야니 사랑에 눈먼 친구가 눈앞의 우정에 초를 친다.

‘가벼운 건 네 입이지 야니의 음악이 아니야’

 

감정이 살짝 상한 나는 ‘아무리 위대한 음악도 취향을 넘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친구는 내 열변에 배경음악을 깔 듯 야니 음악 하나를 틀어준다. 입을 닫는다. 얼어붙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전자음악과 함께 나오는 대피리 같기도 하고 첼로 같기도 한 소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이어  나오는 바이올린 활이 심장을 그어댄다. 눈을 감는다. 한바탕의 회오리가 지난 듯한 연주 끝에 ‘이게 야니 음악이었다고?’라고 물으려다 또한 입을 닫는다. 음악을 들은 감동을 얘기하려는 심사보다 야니의 연주가 가볍다고 속단한 내 가벼움을 입가림 하려는 심뽀를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들려준 음악은 야니 작곡의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였고 나를 감전시킨 소리는 아르메니아 악기 두둑(Duduk)이었다. 세계 일주하듯 연주회를 열어온 야니는 콘서트에 머물지 않고 각 나라의 민속음악과 악기를 자신의 작곡에 끌여들여 ‘세상의 없는 소리’를 만들어온 음악가였다. 세 여자를 완독한 후 야니의 음악세계를 탐험해야겠다.

 

(인터넷ㅍ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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