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철의 삼각관계(Iron Triangle)”를 해체해야

2021.12.20 06:00:00 16면

 

-군산복합체의 등장

 

“맥더글러스(Mcdouglas) 없는 맥도널드(McDonald)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얼핏 단어와 발음도 비슷한 이 조합은 군수산업과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 상징의 결합이다. 전쟁경제체제로 무장한 토대 위에서 번성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대를 일깨우는 말이다. 제국주의의 군사적 토대와 자본이 하나의 몸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여준다.

 

1961년 1월 20일, 퇴임하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TV로 중계된 고별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최근까지 세계적 대전쟁의 과정에서 미국은 영구적 군수산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군수산업 시스템을 장착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합법적 권력도 아니며 그 권위가 인정되지 않은 영향력(unwarranted influence)에 의해 장악되고 위협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바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다.”

 

“군산복합체”라는 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작이었다. 그는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그런 위치를 준 바 없는 권력의 재앙적 수준의 등장이 가진 위력(the potential for the disastrous rise of the misplaced power)”이라고 부르면서 이 권력은 현실에서 존재하고 지속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지배하는 상황을 폭로한 것이다.

 

군산복합체의 계약은 비용와 이윤을 동시에 보장하는 이른바 “비용/이윤 고정계약(cost-plus-fixed-fee contract)”으로 되어 있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군산복합체는 안전한 거래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부패계약이 발생하기도 한다. 함께 나눠먹는 카르텔 부패 동맹이 작동한 결과다.

 

1980년대 록히드-마틴은 미 공군에 화장실 변기 하나를 600 달라, 커피 메이커 개당 7600 달라, 미 해군에 해머 하나에 400 달라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 사실이 드러나 경악하게 했다. 천문학적 액수의 차액을 뒷돈으로 받은 미 군부의 부패 스캔들로 난리가 났었다.

 

-"철의 삼각관계(Iron Triangle)”와 NSCC

 

그럼에도 이런 계약과 부패가 가능한 구조는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바로 “철의 삼각관계(Iron Triangle)”가 견고하게 틀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회, 정부 그리고 군수산업의 감춰진 밀월 동맹 관계다. C. 라이트 밀즈가 쓴 <파워 엘리트(Power Elite)>는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내리는 세력”이라고 하면서 ‘회전문(revolving door)’이라고 불리는 “상호 자리 교체가 점점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increasingly interchangeable)”고 지적했다.

 

2차 대전의 과정에서 더욱 견고하게 형성된 이들은 그 주력이 군수산업과 월가, 그리고 법조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독점 대자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특권 카르텔의 핵심으로 전후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안보국가 기업 복합체(NSCC/National Security Corporate Complex)”를 확고히 만들어냈다. 바로 이 NSCC는 오늘날 미국의 본체다.

 

그런데 이 전쟁기구와 기업을 미국의 권력기구와 결합시켜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역량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려 했으나 한계에 직면하자 결국 전쟁 참여를 통해 전쟁경제를 작동시켜 이런 구조를 영구적 체제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쟁국가(War State)”의 등장이다.

 

1942년 루스벨트는 ‘전시생산국((War Production Board)’을 만들어 전쟁경제를 지휘해나갔다, 기름, 철, 고무, 플라스틱, 옷감 등도 모두 배급제로 전환하면서 총동원체제를 지향하는 가운데 독점 대자본은 전쟁경제의 주축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종전(終戰)을 얼마 앞두고 전시생산국의 위원이던 찰스 윌슨은 “이제 미국은 전쟁기간 중에 입증된 바대로 경제를 군수산업을 기반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 역사가 찰스 비어드의 루스벨트 비판

 

 

이러한 지침이 바로 냉전정책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이를 받아 정책 기조를 세운 것이 바로 폴 니츠의 “국가안보위원회문건-68/NSC-68)”이었다. 이 문건의 핵심은 미국의 세계정책을 대소 ‘봉쇄전략(Containment Policy)’으로 잡고 “영구적 전쟁국가(Permanent War State)”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인류 전체에게 너무나 위험한 국가가 등장하고 말았다,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Charles Beard)는 1948년에 출간한 <루스벨트 대통령과 전쟁의 도래(President Roosevelt and the Coming of the War, 1941)>에서 루스벨트의 이러한 정책 노선 변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다가 “미국은 자신을 과도하게 확대한 제국(over-extended empire)으로 키워 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당대의 탁월한 역사가로 존경받았던 찰스 비어드는 이러한 주장으로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미국 대중들이 뉴딜 정책의 기수로 떠받들고 있던 루스벨트에 대한 비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찰스 비어드의 말년은 이같은 사회적 반발을 겪으면서 외로운 처지가 되었으나 세월이 흘러 그의 주장은 옳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그의 명성은 다시 회복되었다.

 

돌아보면 미국은 1860년대 남북 전쟁을 거쳐 이른바 재건기(Reconstruction Period)를 지나 철도건설과 관련된 대자본이 등장하면서 제국의 시대를 열게 된다. 19세기 말은 미국 내에서 제국 논쟁이 한참 활발해지는 때이며 이 과정에서 구제국 스페인과의 전쟁을 벌인다. 그 결과가 쿠바와 필리핀의 점령이고 이로써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아시아 정책의 주도권을 쥐는 계기를 마련한다.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의 차원에서 보면 “태평양체제의 가동”이 시작되는 기점이었다. 필리핀의 점령은 스페인의 제국지배에서 해방되려고 했던 필리핀 민중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개전했던 것인데 이를 명백히 배반했다. 이후 필리핀 민중의 반미투쟁은 가열차게 전개되고 이를 진압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아더의 아버지 아더 맥아더(Arthur McArthur)이다.

 

-'미국의 원죄’와 우리의 자주

 

아더 맥아더는 1900년 필리핀 총독이 되어 “물치료(water cure)”라는 이름으로 물고문을 도입한 장본인이고 미국의 지배에 항거해 독립투쟁을 한 필리핀 민중들을 초토화작전으로 몰살시키는 무서운 방법을 썼다. 이로써 당시 루손 섬의 인구가 최소한 6분의 1이 멸절되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체제를 계승한 그의 아들 맥아더가 동경 총사령부의 수장으로 있던 미군정기인 1948년 제주 4·3의 학살이 일어난 것도 아울러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에 <평화에 미치다>라는 회고록을 낸 재미 정치학자 박한식 선생은 북을 오가면서 미국과의 평화적 관계를 이루는 일에 헌신해온 분이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대학에 재직한 학자 가운데 보기 드물게 미국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미국의 원죄”라는 개념을 통해 미국의 노예제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학살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미국을 아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이러한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남북의 우리 민족 모두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원죄의 유산은 미국의 정신문화 전역에 확산되어 고착되었다, 노예제도로부터 작금의 인종주의가 파생되었고 인디언 정복으로부터 작금의 군사주의가 파생되었다. 그리고 그 양자가 결합해서 미국의 전쟁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있다. 전쟁병은 이미 치유가 불가능한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내가 내린 결론은 미국의 원죄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다만 정신문화의 영역만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경제 구조에 그대로 담겨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의 “종전선언” 작업조차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베트남과 미국의 수교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는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UN 사무총장을 지냈다는 한 인사는 종전선언을 반대하고 나선다. 도대체 그가 유엔 사무총장을 왜 했는지 모를 정도다.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말하지만 2018년 북한과 미국의 싱가포르 정상회의는 “적대적 관계의 해체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을 합의한 바 있다. 해결은 여기에서 비롯되어야 옳다.

 

“내가 듣건데 미국은 지구상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공평하다고 일컬어지고 난리의 배제와 분쟁의 해결을 잘하며 또 6주(州)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이 없다 하니 저쪽에서는 비록 말이 없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먼저 수교맺기를 힘써 굳은 맹약을 체결하면 고립되는 우환은 거의 면할 것이다.”

 

이는 19세기말 개화파를 길러낸 실학자 박규수의 말이다. 그는 1866년의 셔어먼 호 사건, 이를 구실로 강제개국을 시도한 1871년의 신미양요를 겪었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이해를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 당연히 세계정세 인식을 하기 위한 정보의 부족과 역사 이해가 가능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워낙 나라의 사정이 위급한 처지에 몰려 있었기에 그런 기대를 했을 것이나 현실과의 격차는 너무도 컸다.

 

그러나 이런 박규수의 인식은 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도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거대한 전쟁국가의 주도 아래 전시작전권도 빼앗긴 채 돌려받고 있지 못하니 자주적인 국가의 가장 중요한 주권요소가 없는 상태에 있어온지 오래다. 이에 더하여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윤창출에 기여하는 냉전 분단체제의 적대관계를 푸는 일은 대선이라는 공간에서 전혀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제아무리 진보적 정치인들이라도 이에 대해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반증해준다. 그렇다면 누가 할 것인가? 바로 우리다. 시민들과 지식인들이 입을 열어야 한다. 자기 민족의 평화조차 일구어내지 못하고 통일은 아예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경제의 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본원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막대한 돈이 군산복합체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 전혀 깜깜이다.

 

미국의 '철의 삼각관계'가 미국이 아닌데도 자기 원칙처럼 작동하는 나라는 자주 국가가 아니다. 그걸 해체하는 힘을 만드는 것, 미래정치의 중대한 임무다.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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