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신춘단상

2022.02.23 06:00:00 13면

 

'동장군'(冬將軍)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는 삭풍혹한도 입춘, 우수에 이어 개구리처럼 동면하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 켜는 경칩이 되면 무장해제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꽃들도 제각기 볼록한 가슴을 열어 자부심을 뽐낸다.

 

모두가 양춘가절(陽春佳節)의 주역으로 생명축제의 들판에 진출하는 것이다. 봄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간이다.

 

선남선녀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산야대지로 뛰어나가 약동하며 그 맹추위의 기나긴 억압을 떨치려 한다. 이 자유는 흡사 해방을 맞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선물과 같다.

 

이때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 이름은 '꽃샘추위'. 4월에도 마치 한겨울로 되돌아간 듯 맵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의 군복무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에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는 우리의 인생에도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속에 봄이 있음을 극적으로 가르친다.

 

그 어느 날 칼바람 불던 새벽. 

보초교대하고 하산, 행정반에 신고하러 내려가는데, 조리하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하였다. 개구리 매운탕이었다. 와공 일당은 긴 겨울잠을 멈추고 기어 나오던 날 팽형(烹刑)을 당하여 전방병사들의 술안주가 된 것이다. 

 

이 꽃샘추위에 근사하게 어울리는 문장이 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유명한 시 소군원(昭君怨) 한 대목이다. 


"이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구나(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왕소군은 한 왕실의 궁녀였는데 원제가 흉노왕에게 첩으로 보냈다. 

 

이 정략결혼 이후 양국은 60년 동안이나 긴 시간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전쟁을 막은 유일한 미인이었다. 비록 일국의 왕비였지만, 이역만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후왕의 첩이 되는 승계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결했다 한다. 물론 잘 먹고 잘살다가 갔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역사는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梁貴妃)를 4대 미인으로 꼽는다. 우국충절 이미지의 소군 빼고 모두 비참했다. 

 

서시가 강물을 들여다보면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가라앉았다(침어浸魚). 소군이 흉노행 마차에서 비파 타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기러기가 땅에 떨어졌다 (낙안落雁). 초선이 여포와 함께 걷다가 보름달을 바라보면, 달이 숨었다(폐월閉月). 양귀비가 꽃밭에 나타나면 꽃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수화羞花). 그 신화는 시공을 초월하여, 詩書畵의 고급소재로 군림한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 대형 이벤트의 중심에 후보의 부인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실로 기이하다. 추하다. 역겹다. 깊이 걱정된다. 가슴 아프다. 무능한 정부 여당이 그 부부를 낳았다. 

 

그래도, 나는 최순실의 그 해괴망측한 국정농단을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단죄했던 품격시민들을 믿는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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