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형의 생활여행] 혼합림을 꿈꾸며

2022.03.16 06:00:00 13면

 

 

 

 

사려니숲길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다.

 

유네스코 지정 제주 생물권 보전지역이자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인 사려니숲길에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과 제주족제비, 팔색조, 쇠살모사 등 갖가지 동물이 서식한다.

 

수많은 종이 모여 사는 숲인데, 같은 종이라도 형태가 모두 다르다. 제 몸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구멍을 품고도 싹을 틔우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니은(ㄴ)자 모양으로 가지를 뻗은 기괴한 형상의 나무도 있다.

 

어떤 나무들은 적절히 떨어져 위를 향해 쭉 뻗었지만 어떤 나무들은 밀착되다 못해 서로를 휘감으며 자라나고, 또 다른 나무는 홀로 제 몸을 배배 꼰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된 듯하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사실 자연 속에서 생물들은 치열하게 살아간다. 몸을 기이하게 구부린 나무는 외부의 침입에 대응한 모습이면 곧은 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선 청량한 숲은 키를 키우지 않으면 햇볕을 쬐지 못한 나무들의 경쟁터다. 결국, 격한 생존의 형태다.

 

종도 형태도 다른 존재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할 때, 숲에는 생기가 넘친다.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생명과 공존하려 할수록 그 숲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장이 된다. 그들이 함께 어우러진 세상은 숲을 이루고 자연이 된다.

 

한동안 세상이 들썩댔다.

 

선거기간은 각자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시기다. 평소에 조용히 지내던 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시시비비와 잣대를 내세운다. 지지하는 대상이 다르다면 서로를 물어뜯는 일도 서슴지 않고, 의가 상하거나 부모 자식의 연을 끊는 경우도 허다하다. 잘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기묘한 형태로 자신을 주장을 펼쳐낸다.

 

개표 결과가 나오고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환호하거나 통탄하거나. 반대쪽은 곧 적이기에 승리, 실패와 같은 단어가 거침없이 오갔고 향후 5년은 빛이나 어둠으로 그려졌다.

 

다양한 종이 어우러진 숲은 건강하다. 소나무는 피톤치드로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해 소나무만의 숲을 형성하지만, 산불이 나면 송진으로 인해 전소되기 쉽다. 그러나 활엽수를 비롯해 다양한 종이 어우러진 혼합림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다양한 종이 어우러졌을 때 성숙한 숲이 형성된다. 어떤 위험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각자 다른 가치관이 잘 어우러진 사회가 건강하다.

 

떠들썩한 시기도 지나갔고 향후 5년의 방향도 결정됐다.

 

더 많은 표를 받은 이는 낮은 자세로 권력에 취하지 말고 더 적은 표를 받은 이는 최선을 다해 협조 또는 견제해야 할 것이다. 한 집단만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각자 다르더라도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세상을 위해. 극명한 빛이나 어둠으로 덮이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이 어우러진 성숙하고 풍성한 세상을 꿈꿔본다./ 자연형 여행작가

 

자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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