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형의 생활여행] 초행길을 걷는 법

2022.04.28 06:00:00 13면

 

올레길을 걸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길에서는 조랑말 모양 표지인 간세가, 나뭇가지에 묶인 파란색과 빨간색 리본이, 전봇대와 돌담에 붙은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때때로 부슬비가 내리거나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흐리지만 한적한 숲길이나 바다 옆길을 걸을 때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 집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이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을 지날 땐 반가움에 살짝 손을 든다.

 

잠시 생각에 잠기거나 으레 가던 방향으로 가다 보면 표지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봤던 곳까지 되돌아가 다시 길에 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과 시간을 검색한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초행길을 걸을 때면 모르는 길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경계하면서 스마트폰을 꼭 붙들고 긴장을 놓지 않는다. 길을 잃었을 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지만 위치 파악은 위성이 해주니 화면만 들여다보며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가면 된다. 자연스레 길을 보는 시간보다 화면 속 지도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초록 나무와 파란 바다를 마주할 시간에 블루라이트만 뚫어져라 응시한다. 길을 걷기보다는 길을 잘못 들지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줄였지만 길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 그들은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틀려도 안 되고 실수해도 안 된다는 이 시대의 강박이다. 정해진 소요 시간을 넘어서는 안 되고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와도 안 된다. 강한 기준은 기준 외의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사실 놓친 것이 원래의 목적이더라도.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만 추구하다 보면 종종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 걷기의 목적은 길과 걷는 그 행위 자체에 있다.

 

인생이라는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목적지까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에 대한 사실보다 그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했으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헤아린다.

 

여행과 생에 있어 길은 대부분은 초행길이다. 잘 모르는 길은 두렵지만, 그만큼 새롭고 재미있다.

 

제주올레는 완주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천천히 놀멍 쉬멍 걸으며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한다. 풍광에 홀려, 향기에 취해, 생각에 잠겨 깜빡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다. 되돌아가 찬찬히 주변을 살피면 금세 표지를 발견할 수 있으니 길을 걷는 순간순간을 한껏 즐기면 된다. 틀려도 되는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자유롭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나아가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전면 해체되자 그동안 위축됐던 여행, 교통 어플도 이용자가 증가했다. 비단 올레길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떠나 길을 걷고 있다면 스마트폰 지도를 내려놓고 걸어보자. 그 길을 온전히 걷기 위해, 이 생을 완전히 누리기 위해./ 자연형 여행작가

자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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