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옆 좌석 안모 집사님이 내 손을 잡더니 말문을 연다. ‘오월은 참 좋습니다. 나뭇잎의 싱싱한 기운도 좋고 짙은 숲의 깊은 느낌- 모두 싱그럽고 시원스러운 빛입니다.’라고. 나는 엉뚱한 그러나 싫지 않은 답변의 인사말을 드렸다. ‘저는 계절의 5월보다 안 집사님의 아들 ’0록‘이의 봉사하는 모습이 더 든든하고 5월의 청년으로서 자랑스럽고 장래가 푸르러 보입니다.라고.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봄이다. 5월의 봄날에는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는 노인들도 젊은 모습이다.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필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이어서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라고도 했다. 내 어머니 별명이 ‘앵두’이어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피천득 선생은 ‘오월’이라는 수필 마무리 부분에서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썼다. 이 문장은 피천득 작가를 영원히 대신할 것이다
박완서 소설가는 《피천득 선생을 기리며》에서 ‘나는 박애보다 편애를 좋아하는데 아마 선생님도 그러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선생님 댁에 갔을 때 박완서 작가에게 당신의 책 중 아무거나 뽑아서 좋아하는 구절을 읽어달라고 아기처럼 구셨다고 했다. 박완서 작가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산호와 진주』의 서문을 읽어드렸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조정래 소설가는 《고아한 문인으로서 살다 가신 피천득 선생 영전》에 라는 글에서, ‘선생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이 문인이 된 첫 번째 보람이었던 그때부터 오늘까지 선생님은 참으로 청아했고 고결했고 그리고 우아했습니다.’라고 애도하였다. 이해인 시인 또한 《5월의 러브레터가 되어 떠나신 선생님께》에서 ‘좋은 글귀 한 줄, 나뭇잎 한 장, 조가비 하나도 선생님과 나누면 예술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경재 교수는 ‘피천득 수필의 기법적 특성’을 논하며 그의 수필에 대해 ‘군더더기는 물론이요. 억지나 속됨이 없이 잔잔하고 시원한 여울로 가슴을 적신다.’고 했다. 한 사람의 수필가로서 가슴 무겁게 느껴지는 아픔이 있어 내 삶의 전후를 생각해보는 5월에 나는 서 있다.
『문학에서 경영을 배우다』라고 했던 윤석철 교수가 생각난다. 그는 초, 중, 고, 서울문리대를 전부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이 분은 서울대학문리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에서 경영대학 교수로 정년 한 이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분이 서울대학교 관악 초청 강의에서 재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대학교 출판부에서 엮어 만든 책이 『문학에서 경영을 배우다』인 것이다. 그분이 강의 때 강조한 내용은 ‘네이키드 스트렝스’ 즉 ‘옷을 벗은 후의 힘’ 즉 정년 뒤의 능력’을 지극히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 후반기를 모르고 권좌에서 물러난 한국 대통령은 옷을 벗은 뒤 하와이로 도망가거나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재판받은 분이 많았다고 했다. 본뜻은 봄의 푸른 나무에서 가을과 겨울의 꾀 벗은 나무를 보라는 것일 것이다. 모든 옷을 벗고 가을과 겨울을 보낼 수 있어야 다시 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