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가 이미 심각한 표절 사실이 드러난 김건희 박사논문에 대한 시민사회의 검증 요구를 최종 거부했다. 숱한 허위 경력과 표절로 얼룩진 그녀는 논문 제목에 ‘멤버 yuji’라는 우스꽝스런 표현이 나올 정도로 어설픈 내용에 남의 논문과 블로그를 그대로 베낀 흔적들이 너무 많아 이미 국민들과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쯤 되면 대학이 논문을 취소하고 대학 본부가 공식 사과함이 마땅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달 초 국민대는 “논문 작성의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심각한 표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 대학 교수회가 표절 여부의 심사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절차인가? 연구 진실성 여부는 즉시 검증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마저 부결되어 교수회는 망신을 자초했다.
대학은 언론, 건전한 야당과 함께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3대 축의 하나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시대에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해야 봉건과 전제가 발을 못 붙인다. 그런데 그 한 축인 대학이 이 정도로 타락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존재하는데, 진실을 지키려는 대학인의 기본 윤리가 눈에 안띈다. 상대가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어서인가?
물론 대학의 퇴행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권력에 눈치나 보고 출세에 목을 맨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오래 동안 대학 사회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식 수준에 따라 행동을 하는 법이다. 유아기에는 생물학적 본능에 따라 낮은 수준의 지각만으로 생명 유지가 가능하다. 성장하면서 차츰 다각적 인식을 하게 되고 행동도 고양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인식이 거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재이론과 재실천의 변증법적 지양(止揚) 과정을 거치면서 극복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이론과 실천을 가르쳐야 할 대학이 오늘날 제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질문과 토론이 없는 수업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식이 상대방과 얼마나 또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성찰할 대목은 어떤 것인지 깨닫는 검증과정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학점이나 잘 따서 졸업장을 받으면 그만이라면 대학은 직업훈련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풍토에서 학생들의 올바른 시민의식 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이 비판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비판의 대상과 초점을 제대로 잡도록 하고 엄격한 성찰 과정을 거치도록 가르치는 것은 온전히 교수들의 몫이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金洙暎)은 “신문이 지면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현실의 폭동을 조장하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경향신문 창간 21주년 기고문, 1967). 언론에 주는 경고였지만 토론이 사라지고 진실을 두려워하는 대학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