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당치 않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거짓말 공작

2022.09.28 06:00:00 13면

 

 

기원 전 2세기에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는 나라가 세세손손 영속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진은 불과 15년 만에 멸망했다. 황제는 학문을 탄압하고 이에 저항하는 학자들을 불태워 죽이기까지 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만행을 저지른 탓이 크다.

 

폭압 통치는 진을 어느새 탐관오리로 가득 찬 부패왕조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충신들의 진언을 막은 철권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셈인데, 나라를 망친 자는 다름 아닌 환관 한 사람이었다. 순행 중 급사한 시황제의 죽음에 따른 왕위승계 과정에 주도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趙高)는 권력 찬탈을 위해 유언서의 조작도 서슴없이 벌인다. 시황제는 ‘큰아들 부소에게 장례를 주관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지만 조고는 황제가 믿고 맡긴 옥새를 틀어쥐고 승상 등과 짜고 태자를 바꿔치기한다. 시황제는 평소 모든 신하들이 자신 앞에서 복종하는 모습을 보고 조고도 끝까지 자신에게 충성할 것으로 굳게 믿었으나 배신을 당한 것이다. 시황제의 막내 아들 호해를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운 조고는 급기야 반란의 음모를 꾸민다. 어느 날 호해에게 선물로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신하들에게도 묻는다. 곧이곧대로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은 나중에 조고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다.

 

해외 순방 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윤석열 대통령이 면담 장소를 떠나면서 미국의 의원들과 대통령을 향해 내뱉은 욕설들이 요즘 국내외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의 대표적 언론사인 CBS와 CNN방송, 가디언 등이 이 욕설들을 확인해 대서특필한 것이다.

 

당황한 대통령실은 애초 국내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그랬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뒤늦게 이를 부인하면서 욕설 가운데 ‘국회’는 우리 야당을, ‘바이든’은 ‘날리면’으로 각각 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앞뒤가 안맞은 해명을 내놓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2200년이 지난 지금 인구에 회자되는 괴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집권 국민의힘 중진들마저 대통령실의 변명에 가까운 언설에 사과를 촉구하는 마당에, 일부에서는 이를 야당 탓으로 몰아가는 역공세를 취한다. 심지어 일부 측근들은 이를 특정 방송사의 조작 선동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부르는 격이다.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닉슨은 거짓말을 해서 물러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욕설과 사과 거부, 거짓 해명은 닉슨 사임 사태의 심각성 수준을 이미 크게 뛰어 넘는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임명에 앞서 자신이 했던 강도 높은 검찰개혁 약속을 팽개쳐버린 전력을 지닌 사람이다. 당선 후에는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된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서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사건과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내부총질’ 문자 사건 등을 통해 국정과 당정에 걸쳐 숱한 난맥상을 드러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쏟아내는 계속된 거짓말과 책임전가의 나쁜 버릇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헌법과 민주적 가치들을 이토록 능멸해도 되는 것인가?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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