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사의 '공감숲'] 어느 청년의 물음과 좋은 국가

2022.12.01 06:00:00 13면

 

며칠 전, 어느 노(老)교수가 강의 도중에 “이태원 사고는 거기 놀러간 젊은이들 본인의 책임”이라고 했단다. 한 청년이 강의 관리를 하는 필자에게 물었다. “그 교수님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희생자 중엔 교육생들의 친구, 가족도 있을 수 있는데… 옆에 있는 교육생들 모두가 수근 대며 분노했다.”며 울먹였다. 필자는 “강단에 선 모든 사람의 말이 맞는 건 아닙니다. 상식의 관점이 다른 사람일 수 있어요.”라고 대답해줬다.

 

잠깐의 시간에서 ‘진짜 민심’을 읽을 수 있었다. 일부 언론이 정치검찰권력 카르텔을 옹호하고 대변하고 있을지라도, 바른 생각을 지닌 ‘청년들’이 있었다. 깊은 상념에 잠겼다. 지식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조하건대, 분노하고 망각하고 다시 분노하는 재난의 쳇바퀴에 국민의 미래를 맡겨선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문장. 필자는 이를, 또 다른 이름의 ‘방관’이라고 본다. 무엇하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국정 책임자들의 진지한 반성과 사과도 없었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때도 똑같았다. 재난을 당하는 건 개인 몫이고, 재난은 개인이 알아서 피해야 하고, 결국엔 구조 받지 못하는 비극… 이것을 바꿔야 한다.

 

이태원 참사. 한 달이 지났다. 사고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문화를 장려하든, 엄정한 수사를 신속하게 처리하든, 대응책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재난’을 ‘사고’라고 축소하기에 여념 없다. 유족들과 감성적인 공감은커녕, 책임 회피와 변명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없는 일. 임기를 갖는 대통령이 어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무총리가 대신 져야 한다. 국무총리는 임기가 보장된 것이 아니다. 국정을 나눠서 수행하는 관계 장관에게도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감쌀 일 아니다. 결단이 필요하다. 더 이상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유족과 국민을 화나게 해선 안 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의 호위 무사가 되어선 안 된다. 중앙부처 뿐만 아니다. 지방정부의 책임은 중앙정부 이상으로 지대하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르면 광역지방자치단체는 포괄적 재난관리를, 소방은 긴급 구조기관 역할을, 경찰은 강제대피 조치와 통행제한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돼있다. 각 기관은 유기적으로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조사를 통해 관계 부처장은 물론이고, 각 기관별로 책임질 책임자를 규명해야 한다. 구조에 헌신했던 일선 공무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 책임이 적확하게 배분돼야 할 것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진상을 밝혀내자. 그러기 위해선 국회 출석이나 서류 제출을 거부하고, 답변을 회피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 강화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는데, 무력한 국회의 모습을 지켜볼 순 없다. 심란한 늪에서 국민을 건져내야 한다.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법무부, 행정안전부, 서울시, 용산구, 경찰청, 소방청의 협조체제에서 누가 역할을 방기했는지 규명해야 한다. 그게 어느 청년의 물음에 답변하는 ‘좋은 국가’다.

 

 

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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