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생 족쇄 ‘학폭’ 징계처분 졸속심의 개선해야

2024.03.13 06:00:00 13면

학폭위, 1시간 만에 징계수위 결정 허술한 구조 안 될 말

교육계 최대 이슈 중 하나인 학교폭력(학폭) 문제는 그 중대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반드시 근절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그러나 아무리 범죄가 심각하다고 해도 가해자에게 평생 남는 ‘학폭’ 징계기록인 만큼 징계 결정 과정은 최대한 공정해야 한다. 현장에서 불과 1시간 만에 자료검토·협의를 모두 마치는 졸속심의 구조는 개선돼야 마땅하다.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은 결코 누군가 억울한 족쇄를 차도록 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학폭’ 발생 시 당사자들은 3주가 지난 후에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학폭위에서 가해 및 피해 심의를 받게 된다. 이후 협의를 거쳐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 가해 학생의 징계 조치 수위를 정한다. ‘학폭’ 징계 조치는 1~9호까지며 교육부는 지난 1일부터 6호에서 8호까지는 4년간 생활기록부에 남기기로 했다. 9호의 경우에는 영구보존된다.


‘학폭’ 보존 기간이 연장되면 고교 졸업 후 삼수, 사수를 하더라도 학폭위 처분이 기재된 학생부로 대입을 치러야 해 ‘진학’에 영향을 준다. 또 고교 때 저지른 학폭은 ‘취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2년제 전문대학에 진학해 대학을 4년 안에 졸업하면 가해 기록이 남은 학생부로 취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폭 기록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지만 의견서 제출, 자신의 처지를 밝히는 진술 등이 너무 짧은 시간에 진행돼 제대로 된 교육적 처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학폭’사건 한 건당 심의 시간은 대략 1시간이며 사안 검토 10분, 가해자 진술 10분, 질의응답 시간 10분, 협의 20분 등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학폭위 위원을 역임했던 인사들은 “질의응답을 하고 당사자가 자기 변론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5분밖에 안 되는데 1시간이 지나면 장학사들이 빨리 끝내라고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폭’ 처분까지 충분한 시간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자송 전국교육네트워크연합 대표는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일을 20분 안에 검토하게 해선 안 된다”며 “충분한 교육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020년 3월 학폭위 담당 기관이 학교(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교육지원청(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으로 이관되면서 학교에서는 웬만하면 문제를 학폭위로 넘기고 발을 빼는 경향이 강해졌다. 담임 교사가 자체적으로 화해를 유도해서 처리하게 하다가는 자칫 학교폭력을 축소·은폐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징계를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구조다 보니, 피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의 부모가 요구하면 아무리 경미한 사건이라도 무조건 학폭위로 간다는 얘기다. 


결국, 부실한 조사 자료를 근거로 자질도 충분치 않은 위원들이 대법정과 같은 위원회에 모여 앉아서 짧은 시간에 한 학생의 인생을 결정짓게 되는 구조다. 이건 말이 안 된다. 피해 학생의 일상을 망치고 때로는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는 ‘학폭’은 무조건 근절돼야 한다. 그러나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금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폭’ 심의와 징계 결정은 충분히 신중을 도모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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