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성장 절벽'을 눈앞에 둔 채로 출범했다. 내수 침체와 관세 리스크가 커지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금융위기 수준인 0%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을 통해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9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낮췄다. 이는 기존 전망치(1.5%)의 절반 수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과 같은 수치다. 이미 1분기 우리 경제가 0.2% 역성장한 상황에서 정책 역량을 끌어올려도 올해 0%대 성장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국내외 대부분의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를 넘기기 어렵다는 것에 의견을 모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올해 성장률을 0.8%로 하향 조정했으며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도 전망치를 1.5%에서 1%로 0.5%포인트(p) 낮췄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경제를 뒷받침했던 수출마저 위기에 놓이면서 저성장을 초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4월 평균 소매판매액 불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했다. 지난해에 이은 2년 연속 감소로, 민간소비가 전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 동력인 수출 역시 미국발(發) 관세 불확실성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수출액(572억 7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1.3% 감소했으며, 대미 수출은 8.1%나 줄었다. 특히 미국의 관세 부과 충격이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2분기 기업 실적 전망은 더욱 암울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통화정책의 운신폭이 좁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30조 원 이상의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편성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4일 오전 취임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말했다.
추경 시기 만큼 추경 내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초 국회를 통과한 1차 추경이 산불 피해 복구와 통상 ·인공지능(AI) 지원 등 '급한 불 끄기'에 집중했다면 새 정부에서 추진하는 2차 추경은 '내수 회복'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지역화폐 지원 확대, 소비쿠폰 지급 등이 유력하게 지목된다. 민주당은 앞서 공약집을 통해 지역화폐 발행을 국고로 지원하는 '지역화폐 발행 지원 의무화'를 약속한 바 있다. 또 길어지는 내수 부진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책, 건설업 보강, AI 등 신사업 투자 방안 등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유세 기간 35조원 이상의 추경 편성을 예고했다"며 "하반기 추경은 지역화폐와 취약계층 소득지원 등 내수진작에 초점을 맞춰 추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조직 정비 및 내각 구성, '줄라이 패키지'(7월 포괄합의) 협상 후 세부 내용을 가다듬고 7월 하순경 국회에서 의결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추경 재원을 국고채 등 빚을 내 조달해야 하는 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유지할 지도 관건이다. 지난달 기준 국가채무는 1280조 8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8.4%에 달한다. 여기에 30조 원의 국채를 더하면 국가채무는 1300조 원을 뛰어넘게 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경기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확장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1차 추경이 있었고, 지금도 재정 기조는 확장적"이라며 "추가 추경은 효과뿐 아니라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경기 급락이 아닌 이상, 현 시점에서 재정 확대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추진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한 번 더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