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강제력이 있는 규범이다. 법규범이 아닌 규범도 많다. 강제력이 없는 규범도 많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 의하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도 바로 법이 아닌 규범이다.
법은 연약하다. 공들여 만든 법도 불완전하다. 공백과 흠결과 우회로가 있다. 적용할 법이 없는 상황들도 전개된다. 법기술자들은 법의 문구를 내세우며 법의 목적을 배신하거나 법의 목적을 내세워 법의 문구를 무시할 수 있다. 법률제정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에 부합하도록 법을 바꾸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권력을 위해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을 몇 번이고 다시 긋기도 한다.
위법만 아니면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다 해도 된다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위법이 아니라고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유지한다. 위법이냐 합법이냐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세우고 지키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든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첫번째 대통령일 뿐 아니라 인류 역사상 첫번째 대통령이었다. 워싱턴 본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겪어본 적이 없었고 대통령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모든 행보가 선례였다. 워싱턴의 선례는 그 이후 미국 대통령들의 규범이 되었다.
워싱턴은 대통령의 권한인 거부권을 임기 동안 단 2차례만 행사했다. 더 많은 거부권의 행사가 위법이 아닌 합법인데도 그렇게 했다. 워싱턴은 행정명령을 자제했다. 행정명령이 법이 부여한 그의 권한인데도 의회를 존중했다. 워싱턴은 대통령을 2번만 했다. 3연임 금지법 같은 것이 없었으니 3연임이 허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국부가 대통령을 3번 한다고 해도 막을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워싱턴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처음으로 불문율을 깨고 3연임을 할 때까지, 어느 대통령도 3연임을 하지 못했다. 워싱턴은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하지 않았다. "새로운 공화국을 굳건한 기반 위에 세운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는 단연코 워싱턴이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진짜 대한민국이 아니었고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면, 진짜 대한민국의 첫 지도자들은 “내가 국부다”, “내가 파운딩 파더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워싱턴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이 부여한 권한이어도 끝까지 다 행사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어도 남김없이 다 행사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더라도,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되더라도,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고,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일이어도, 할 수 있는 일이어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신상과 관련된 법안을 무리하게 처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취지가 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이른바 방탄입법들의 속도조절이 예상된다는 기사가 반갑다(중앙일보 2025년 6월 16일 “이대통령 발언뒤 방탄법안 멈췄다”). ‘헌법적 강경태도’를 내려놓는 선순환의 시작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