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30대 미얀마인 근로자가 감전돼 중상을 입은 사고 관련, 누전차단기의 감도가 안전기준을 한참 초과하는 등 '인재(人災)' 정황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9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 수사전담팀은 이번 감전 사고의 원인이 된 양수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분전함 내 누전차단기의 정격감도전류가 500㎃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전기 기계나 기구에 설치된 누전차단기는 정격감도전류가 30㎃ 이하여야 하는데, 이런 기준을 한참이나 초과한 것이다.
정격감도전류가 30㎃ 이하인 경우 인체의 감전 보호가 주목적인 고감도형 누전차단기이고, 100㎃를 넘으면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방지하거나 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중감도형 누전차단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사고 현장의 누전차단기는 사람이 감전당할 전류가 흘러나오는 상태가 되더라도 감도(전류에 반응하는 정도)가 높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감전 발생 시 통전전류의 크기가 15~50㎃면 스스로 이탈이 불가능하고, 50~100㎃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현장 감식에 투입됐던 전기 전문가들은 누전차단기에 관해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상식 밖이다'라는 등의 평가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근로자는 지하 물웅덩이에 설치된 양수기에 진흙이 들어가자 이를 빼낼 수 있도록 로프로 양수기와 중장비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다가 감전으로 쓰러졌다.
감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전력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는 안전매뉴얼이 있었지만, 전기 차단기는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듯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 우리말이 서툰 미얀마인이 절연 장갑이나 장화 등 기본적인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홀로 작업에 투입됐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게 현재까지의 경찰 수사 결과이다.
경찰은 참고인 18명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진술 내용을 분석하고 있으며, 해당 작업을 전기와 관련한 별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해도 되는지에 대해 관계 기관에 질의했다.
경찰은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인 LT 삼보의 공사 관계자 2명을 각각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한 상태이다. 입건자는 추후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누전차단기를 내려놓고 작업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규정에 맞는 누전차단기를 설치했다면 근로자의 부상이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오후 1시 34분쯤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미얀마인 근로자 1명이 감전돼 크게 다쳤다.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현장에서는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현장 추락사고, 4월 경기 광명 신안산선 건설현장 붕괴사고와 대구 주상복합 신축현장 추락사고, 지난달 경남 의령 함양울산고속도로 공사현장 끼임사고 등 올해 들어 4차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 경기신문 = 안규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