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수선하다.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테헤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이란이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면서 유가 급등, 나프타 수급 차질 등 충격파가 이어지고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조차 전망을 내놓기가 힘들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과 상관없이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올해 봄은 예년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왔는데 남쪽에서는 이미 벚꽃이 만개했고 서울에서도 평년보다 열흘 정도 빨리 벚꽃이 피었다고 한다. 세상은 늘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계절은 늘 자기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봄은 늘 그렇게 온다.
한국에서 봄 축제의 대명사를 꼽으라면 단연 진해 군항제일 것이다. 전국 최대의 봄 축제이고 수많은 상춘객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진해를 찾는다. 여좌천 벚꽃길과 기찻길 벚꽃 터널, 군악대 퍼레이드까지 도시 전체가 축제장이 된다. 하동 화개장터 벚꽃축제, 청도군 벚꽃 행사, 서울 성동구 송정마을 벚꽃길 공연과 북페어, 부산과 울산의 벚꽃 행사까지 봄이 되면 전국이 벚꽃 축제 분위기로 변한다. 사람들은 벚꽃 아래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거리 공연을 보고, 시장을 구경하며 봄을 즐긴다.
그런데 사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봄이 오면 마을마다 봄 축제를 즐겼다. 농경민족이었던 우리 선조들에게 봄은 매우 중요한 계절이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고먹고 노래하고 춤추며 봄을 맞이했다. 그 대표적인 봄놀이가 바로 화전놀이다.
화전놀이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산이나 들 같은 경치 좋은 곳으로 나가 꽃을 보며 음식을 먹고 노는 봄놀이였다.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 반죽에 붙여 화전을 만들어 먹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놀이였다.
특히 화전놀이는 한 마을의 부녀자들이 무리를 지어 산천으로 나가 하루 동안 잔치를 벌이는 집단 놀이의 성격이 강했다. 그들은 화전과 떡, 국수, 술 등을 나누어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며 하루를 보냈다.
평소에는 집안일과 농사일로 바쁘던 여성들에게 화전놀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봄이 오면 화전놀이를 기다렸다.
이 풍습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수 있다. 겨울 동안 움츠리고 있다가 봄이 오면 산으로 들로 나가 꽃을 보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공동체 축제였다. 지금 우리가 벚꽃 축제를 즐기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중앙아시아에도 봄을 맞이하는 큰 축제가 있다. 바로 나우르즈다. 한국의 봄 축제에 해당하는 중앙아시아의 가장 큰 명절이다. 나우르즈라는 말은 페르시아어에서 왔는데 “나우”는 새로운, “루즈”는 날이라는 뜻이다. 즉 “새로운 날”, 새해를 의미한다. 춘분인 3월 21일을 기준으로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새해 명절로 기념한다.
중앙아시아인들에게 나우르즈 축제는 새로움, 풍성함, 사랑과 우정을 상징한다. 나우르즈 축제 전에 사람들은 대청소를 하고, 꽃과 나무를 심는다. 또 그 때까지 진 빚을 다 갚고, 다투었던 이웃과도 화해를 하는데, 섣달 그믐날까지 모든 묵은 것을 다 털어버리는 우리네 풍습과 똑같다. 또 카자흐사람들은 나우르즈가 오면 모든 질병과 어려움을 없애준다고 믿는데, 정월 보름에 부름을 깨면서 무병과 복을 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나우르즈 연휴로 지정되었고 각 도시별로 다양한 축하행사가 진행되었다. 시장과 주지사 등 지방정부 수장들은 나우르즈 축제에 직접 나와 새 봄이 왔음을 알리고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축제가 중요한 만큼 준비할 것도 많다. 나우르즈 기간에는 모두가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만나면 서로 껴안고 ‘꼭뗌 투드(봄이 태어났다)’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모든 불행과 재앙이 피해가도록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데, 우리가 복조리를 걸어놓고 복을 빌며 신년덕담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정에서는 식탁에 화려한 식탁보(다스타르한)을 씌우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또 이웃을 초대하기 위해 일곱 가지 재료로 만든 ‘나우르즈 꼬줴’라 불리는 전통 수프를 준하고 나우르즈 기간에 먹는 음식인 나우르즈 꼬줴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수프에 들어가는 일곱 가지 재료는 물, 고기, 소금, 기름, 밀가루, 곡류(쌀, 옥수수, 호밀 등), 우유인데, 이 재료들은 인간 삶의 요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나우르즈 꼬줴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각각의 의미를 해석하면 즐거움, 행운, 지혜, 건강, 자산, 속력(카자흐 민족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성장 그리고 신의 보살핌이다.
나우르즈에서 카자흐스탄 전통 말 타기 경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경기에는 여자들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자들도 어렸을 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웠다. 경기에서 여자가 승마 선수에게 도전해서 그 남자를 이기면 남자는 여자에게 복종하고 그녀의 소원을 다 들어줘야 했다. 반대로 남자가 이기면 남자는 여자의 손과 마음을 차지할 권리를 얻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 축제를 나부르즈 또는 나브루즈라고 부른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3월 21일은 국가 공휴일이고 전국에서 공연, 시장,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이 열린다. 특히 나부르즈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은 수말락이다. 밀싹으로 만든 음식인데 큰 가마솥에 넣고 밤새도록 사람들이 돌아가며 저어 만든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축제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하며 밤을 보내고, 완성된 음식은 이웃과 친척에게 나누어 준다. 이 음식은 풍요와 새로운 생명을 상징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화전놀이와 중앙아시아의 나우르즈는 매우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농경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봄놀이를 했고, 유목 문화권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는 봄이 오면 새해 축제를 열었다.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 살든 봄을 기다렸고, 봄이 오면 축제를 열었다.
봄은 단순히 따뜻해지는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계절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동물들이 새끼를 낳고,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래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봄을 기다렸고, 봄이 오면 축제를 열었다. 한국의 화전놀이도, 벚꽃 축제도, 중앙아시아의 나우르즈도 결국 같은 의미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 말이다.
지금 세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중동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서울에도 봄이 오고, 진해에도 봄이 오고, 알마티에도 봄이 오고, 타슈켄트에도 봄이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꽃을 보고, 축제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나누며 살아간다.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다. 긴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고, 봄이 오면 축제를 열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또 다음 봄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중동 사태가 하루빨리 끝나고, 세계에도 평화의 봄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