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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오늘도 봄날

 

지난밤 봄비 내리고 나는 출근을 한다. 팍팍한 도심의 도로를 피해 내리천 둑방길따라 봄을 품어보는 시간. 넉넉한 품으로 대지의 뒤엉킨 가슴팍 묵묵히 녹여낼 줄 아는 봄 앞에, 양팔 벌려 그 봄 맞으려는 내 모양새가 어설픈 어리광인 줄 알면서도 해마다 4월이면 하게 되는 나만의 봄맞이, 꽃놀이 행사가 되었다.

평택에서 팽성 방향 넓은 도로를 달리다 근내리 한적한 길로 접어들 때쯤이면 벚꽃들의 미소가 드문드문 번지기 시작한다. 바람조차 느리게 거니는 한적한 시골의 정서만으로도 그 길은 시속 60㎞의 제한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동창리와 대추리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아기자기한 장식이 어울리는 다리하나를 건널 때쯤이면 도로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내리천을 왼쪽으로 끼고 추억처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도로. 도로는 벚나무 가지마다 벚꽃 잎 흐드러지게 피우고 하늘을 양껏 열어놓았다. 술렁이는 봄바람에 떼를 지어 오르내리는 물 오른 분홍꽃잎들의 날갯짓. 파닥이며 연거푸 바람을 타는 저 벚꽃들의 한껏 풀어진 자유라니. 그야말로 봄날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봄은 언제나 색깔 달라짐에서 시작되었다.

겨우내 물고 있던 목련의 털복숭이 겨울눈이 뽀얗게 달라지는가 하면 버드나무 가지 끝 샐쭉하게 내어놓은 연녹색의 앙증맞은 손짓. 밤사이 내린 봄비에도 금세 달라지기 시작하는 개나리 노란 입매. 후두둑 후두둑 몇 번 떨어진 빗방울에도 활짝 웃으며 반응하는 들풀의 여리디 여린 연두색까지. 봄은 그렇게 숨길 수 없는 순수한 본색에서 시작하는 자연의 축제인 것이다. 한 가지 색깔로 시작하여 갖가지 세속의 색깔들과 어울리다 마침내 어우러져 비슷한 색깔들 마음껏 뿜어내는가 하면 다시 늦은 가을이면 살아온 자기색깔 그대로 남기고 겨울 속으로 자연스럽게 묻혀가는 그들의 잔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그들의 잔치는 곧 우리들의 잔치이기도 하다.

여러해살이 식물의 한 살이가 시작되는 봄이면 여러해살이 사람들의 봄도 웅크린 몸 풀어내듯 노곤한 식곤증과 더불어 봄 아지랑이처럼 숨은 듯 뿜어져 나오는 또 한 번의 에너지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눈 녹아 흐르는 땅 밑 물소리 듣기라도 한 것처럼 들풀 돋아남에 예민하게 반응하다, 봄꽃이 들불처럼 피어나는 그 흥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갖가지 꽃 색깔 치장을 하고 들로 산으로 나가 어우러진다. 그렇게 사람들의 봄도 알록달록하게 또는 두근두근 거리는 겉과 속의 색깔 달라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벚꽃에 취해 잠시 올라 본 둑방. 목젖 환하게 보이도록 웃어젖히는 저 개나리. 발 옆으로 수줍은 제비꽃, 군데군데 민들레, 가녀린 냉이꽃. 내리천 속내까지 훑어온 듯 시원한 바람까지. 4월 꽃들의 갖가지 색깔 다른 웃음소리가 폭죽처럼 번지고 있었다. 멀리 자동차는 쉼 없이 지나가고 누군가는 출근을 하고 누군가는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또 언성을 높이는 이 시간. 아랑곳하지 않고 해를 기점으로 봄은 또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먼 곳까지 가지 않고도 그 봄 한껏 품어보는 나. 나의 봄도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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