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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자벌레, 자벌레가

 

자벌레, 자벌레가

/변종태

오일시장에서 오백 원에 사 왔다는,

칠순 노모의 고추 모종을

자벌레 한 마리가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제 몸을 접고 접어 세상을 재던 놈이

제 몸의 몇 배는 됨 직한

고추 모종을 해치우고 나서

다른 모종으로 건너가다가 내 눈에 딱 걸렸다.

먼지투성이 흙밭에 내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걸 어떻게 죽여줄까를 고민하다가

아, 나도 노모老母의 생을 저렇게 갉아먹었을까.

빼꼼히 열린 욕실 문틈으로 비친

몸을 닦는 노모의 몸뚱이에 내 이빨자국 선하다.

 

 

 

 

 


 

 

 

 

 

이 시는 화자의 노모가 사온 고추 모종을 자벌레가 갉아먹은 사건에서 비롯한다. ‘자벌레’와 ‘고추 모종’의 관계가 화자와 노모의 관계로 치환하는 발상이 빛난다. 고추를 갉아먹은 자벌레처럼 화자도 어머니를 아프게 하면서 살아왔다는 반성을 하는 순간 화자와 자벌레는 동격이다. ‘이빨자국’은 아프고 여운이 있게 한다. 이 시를 읽으며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인연을 맺기는 어려워도 이빨자국을 내며 상처를 주기는 쉽다. 그러므로 혈연이든 지연이든 학연이든 관계를 아끼고 살펴야겠다. 때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믿음이 깨져서는 곤란하다. 살수록 실감을 한다. /박수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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