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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日, 위안부 피해자 생존할 때 사과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밤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 많은 삶이었다. 김 할머니는 15살부터 8년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차마 감내하기 어려운 온갖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온 인권 평화 활동가이기도 했다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설명처럼 김복동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여론을 고조시키는 활동을 이어 왔다.

1992년 본인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어 1993년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성노예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 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위안부 피해를 알림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정부에 정면으로 맞섰다.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김할머니는 2017년 말 병석에 눕기 전까지 거의 매번 집회에 참석했다. 고인은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의견을 듣지도 않고 한일 정부 간에 ‘위안부 합의’라는 것을 하고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자 이를 해산하라며 1인 시위도 하는 등 평생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최일선에서 싸웠다.

김할머니의 소원은 일본 총리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었는데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종을 지켜본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김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일본에 대한 분노’였다고 밝혔다. 안타깝다. 그날 오전 또 한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 이제 23명밖에 남지 않았다. 김할머니 등 2명의 피해자가 별세한 28일에도 일본 고노 외무상은 ‘한국에 위안부 합의를 지키라고 강하게 요구하겠다’면서 또다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도 했다.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은 초계기 위협비행을 거듭하면서 한일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나라에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도 끌려가서 일생을 희생당했다”고 탄식한 바 있다. 아직도 우리는 힘이 없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김복동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 일본은 그분들 앞에서 사죄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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