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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지식은 영혼의 최종적 완성인가?

 

 

 

사방에서 배움의 열기가 뜨겁다. 우리가 자라던 시대에는 책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오는 쾌락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영어조기교육으로 주제가 옮겨졌다. 좌중의 한 사람이 자기 손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화교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름 영어교육 권위자라고 생각하여 대화를 주도하던 또 다른 사람이 허를 찔린 듯 화들짝 놀라며 왜 화교학교에 보내는지 캐 물으면서 뜨겁게 달아오르던 대화는 어린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는 일반론으로 끝이 났다.

그러고 보니 공자는 ‘논어’ 1편에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 하여 배움의 기쁨을 말한 바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형이상학’ 서두에서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지식을 원한다”고 하여 인간을 배움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인간이 느끼는 기쁨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현자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테는 ‘향연’ 제 1장 서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을 인용하면서 “지식이 우리 영혼의 최종적인 완성이며, 그 안에 우리의 최종적인 행복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는 모두 그 욕망에 이끌린다”고 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배움’이나 ‘지식’은 기쁨이라는 감각적 차원을 넘어 이성적이고 동시에 심미적인 쾌락과 관계되며 기쁨이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의 영혼은 완성되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을 향한 열망이 이렇게 뜨거운데 행복을 찾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단테는 ‘향연’에서 그 내적 요인을 육체와 영혼의 문제에서 발견한다. 육체적 요인 중의 하나는 게으름이며 영혼의 요인은 악의가 영혼을 지배하여 사악한 쾌락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쉽게 문명(文名)을 얻으려는 세속적 명예욕, 지식을 향한 왜곡된 욕망 역시 사악한 쾌락과 관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1942년에 발표된 나카지마 아츠시의 단편소설 ‘산월기’가 생각난다. 이 작품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 등 역사의식으로부터 나온 실존적 부조리와 군국주의라는 체제의 광기의 결합으로 비극적 주인공 이징이 창조된다.

이징은 학식도 많고 재능도 뛰어나지만 실력에 비해 자신의 관직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그의 궁극은 시인으로서 후세에 이름을 크게 남기겠다는 세속적 욕망에 있다. 결국 관직을 박차고 나오지만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지방 관리로 돌아가지만, 문명에 대한 욕망의 화신이 되어버린 이징은 급기야 광기에 휩싸여 어둠 속으로 뛰쳐나간다. 이듬해 친구가 숲을 지나다 사나운 호랑이로 변신한 이징을 만나게 된다.

비극에는 대체로 대단원 다음에 자기발견이 따른다. 이 작품의 대단원은 호랑이로의 변신이다. 이징은 친구에게 자신의 변신 과정을 설명하면서, 과연 인간과 짐승이 원래부터 다른 존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징을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야수성의 보편적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징이 단테가 말한바 인간의 최종적 완성을 방해하는 육체적 게으름뿐만 아니라 영혼의 사악함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이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측 반응을 지켜보면서 인간 심리의 복잡성에 대한 단테의 날카로운 통찰이 6세기가 지난 1942년 일본군국주의의 뿌리인 광기에 사로잡힌 맹수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왜곡된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과 광기에 영혼을 내맡긴 자는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다. 지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정직하게 스스로를 갈고 닦을 때 조그마한 행복이라도 깃들지 않을까 불안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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