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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의 인천얘기 6 - 인천국제해양포럼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16세기 말~17세기 초 무렵을 풍미한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 탐험가였던 월터 롤리(1552?~1618) 경의 말이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재위 1558~1603)의 총신이자 신세계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만든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강력한 해양력으로 영국을 유럽 최강국의 반열에 올려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국민들로부터 가장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추앙 받고 있다.

 

그가 원래 한 말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의 사후 전개돼온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지금도 그의 말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양을 둘러싼, 또는 대양을 통한 당시 세계 열강의 치열한 쟁패가 본격화한 것은 15세기 후반 ‘지리상의 발견’ 이후부터다.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리케 왕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남긴 바르톨로뮤 디아스, 인도에 처음 도착한 바스코 다 가마,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콜럼버스,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에 성공한 마젤란 등이 인류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탐험과 발견’의 주역들이다.

 

이 때부터 종전까지는 주로 육로에 의해, 기껏해야 한 대륙 안이나 인접 대륙 간에 벌어졌던 영토와 이권다툼이 바다 건너 아득히 먼 미지의 땅에까지 무한정 확장되기 시작했다.

 

해양패권을 쥔 국가는 점령지(식민지)로부터 나오는 수 많은 자원과 향료 등 고가·희귀 물품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누렸다. 당시 항해술과 선박건조술, 무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지리학, 천문학 등에서 앞서 나갔던 유럽의 각 나라들이 앞다퉈 경쟁에 뛰어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이 ‘패권’을 위해 수 세기 동안 죽고 죽이는 각축을 벌였다. 죽은 자는 쇠망의 길로, 죽인 자는 번영의 탄탄대로를 걸었다. 맨 처음 대양개척에 나섰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별 볼일 없던 소도시에서 일약 지구사의 전위가 되는 혁신도시로 올라섰다.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포르투갈의 흔적은 브라질(공용어), 타이완의 명칭(포르모사), 마카오, 일본에 전해진 총기와 야소교(기독교)에 남아 있다. 가공할만한 군함과 화포, 선교를 앞세운 이들의 다툼이 치열해질수록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많은 사람과 문명,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거나 예속의 굴레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유럽 국가들에 비할 수 없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중국, 일본은 어떠했나. 사면이 바다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바다와는 거리가 먼 역사였다. 수시 또는 지속적인 해금(海禁)정책을 펴면서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철저히 틀어 막았다.

 

때문에 통일신라시대 청해진을 통해 한·중·일 3국을 잇는 제해권과 무역권을 독점하면서 위명을 떨친 장보고(張保皐, 787~846)와 명나라 영락제 때 엄청난 규모의 선단을 이끌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7차례나 항해에 나섰던 삼보태감 정화(鄭和, 1371~1433?)의 찬란했던 빛은 그들을 보호해주던 통치자가 죽자 급격히 스러져버렸다. 한 올의 자취도 남김없이.

 

‘왜구(倭寇)’로 대표되는 노략질이 해상활동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일본도 사정은 비슷했으나 16세기 중반 이후 한국, 중국과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1543년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種子島)의 14대 도주 도키타카는 표착한 명나라 선박에 타고 있던 포르투갈 상인들로부터 철포(화승총) 2자루를 구입했다.

 

복제에 이어 뎃포(조총)로 재탄생한 뒤 대량 제작되면서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이루는 토대가 됐고,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는 한 요인이 됐다. 일본은 또 에도막부 시대 나가사키(데지마)에서 활동하던 네덜란드 상인들로부터 세계 정세 등이 상세히 담긴 보고서 ‘화란풍설서’를 정기적으로 받았다. ‘난학(蘭學)’이 탄생하고 활짝 꽃 피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이 한 발 앞섰던 수용성과 철저한 내재화, 과감한 정치개혁에 기반한 자신감과 자만심이 결국 제국주의로의 그릇된 길잡이 구실을 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터이다.

 

양상은 다르지만 해양(바닷길)을 둘러싼 경쟁의 치열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바다와 이어지는 항만은 단순히 사람과 화물이 오가는 공간을 넘어 공항과 함께 물류의 양대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느 한 쪽에서라도 낙오하면 우리몸의 중요한 동맥이 막힘과 진배없다. 특히 육로를 통한 대륙으로의 진출이 봉쇄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주 인천에서 ‘인천국제해양포럼’이라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올해가 첫 번째다. 이틀 간 국내·외 최고 전문가 48명이 참가해 세계 해양산업의 미래발전방안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어느 분야나 건전한, 선의의 경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발전과 진보가 따른다. 올바르지 않은 경쟁은 문란한 질서와 퇴보를 불러올 뿐이다. 편법이 또 다른 편법을 낳는 악순환의 종착점은 한 곳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선박 건조나 화물 운송, 항만운영 수준 등 여러 면에서 세계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해양강국이다. 국제해양포럼이 연례적으로 이어져 인천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류에 공헌하고 상생의 길을 선도하는 해양도시로 우뚝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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