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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모든 일은 고양이 팔찌에서 시작됐다

⑬ 노바디 - 일리야 나이슐러

 

세상을 살면서 후회할 일은 많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저질렀던 잘못된 선택? 미얀마 군부 학살을 규탄하는 성명서에 서명을 안한 일? 그런 것들과 동급까지는 아니어도 진짜 후회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 ‘노바디’를 놓치는 일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액션영화를 총 망라한 듯한 작품이다. 갖가지 요소를 다 비벼 넣었다는 그런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영화가 주는 쾌감이 극대화돼있다는 얘기다. 액션영화를 두고 누구는 너무 폭력적이라고 툴툴댄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 허치(밥 오덴커크. 맞다. 당신은 이 배우를 모를 것이다. 하도 많은 영화에서 신 스틸러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배우의 진가를 드디어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나 장미나 늦게 피는 존재가 향이 오래가는 법이다)의 폭력은 후련하다 못해 통쾌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화적 쾌감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난 4월 7일 개봉된 영화 ‘노바디’의 현재 관객 수는 약 12만 명. 예전 같으면 수백만 명의 관객들이 환호했을 작품이다. 지금이라도 극장에서 이 영화로 덕지덕지 묻어 있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 보시기들 바란다.

 

영화 내용도 딱 그렇다. 주인공 남자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려다가 최악의 러시아 갱단을 만나 한판 신나게 세상을 평정한다는 얘기다. 알고 보니 이 남자, 단어 세 개로 끝나는 미국 정보 및 첩보 기관 세 군데의 감찰관 출신이다. CIA, FBI,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 마약 단속국) 등이겠다.

 

그리고 여기서 감찰은 회계비리 등을 검색하는 사무 일이 아니라 내부 비리를 찾아내서 이를 끝까지 추적해 작살…아니 처단하는 업무다. 어마어마한 살인 병기 출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허치란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고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만난 여인 레베카(코니 닐슨)와 사랑에 빠져 완전히 새롭고 평범한 남자, 가장으로 거듭난다. 애까지 둘을 낳는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지루하다는 것이다.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화요일쯤에는 꼭 쓰레기차를 놓치고, 매번 같은 도시락을 싸서 늦지 않게 출근하고, 사무실에 꼬박 앉아서 회계 업무를 보고(진짜 회계 일) 한 번도 늦지 않게 귀가한다.

 

딸아이는 그런 가정적인 아빠를 좋아하지만 아들은 아빠를 다소 무능하고 지루하게 본다. 아내 레베카도 이제 좀 싫증을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부는 침대 가운데에 베개의 성을 쌓고 잔다. 섹스도 키스도 하지 않은지 오래다.

 

그래서 허치는 어느 날 폭발한다. 집에 남녀 강도 두 명이 드는데 아들이 한대 얻어맞는데도 그걸 어쩌지 못하고 지켜본 탓에 아들에게도, 출동한 경찰에게도, 이웃에게도, 장인과 처남에게도, 결국 아내에게도 무능한 남자 취급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 일은 과거 허치가 지녔던 폭력 본능을 일깨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까 말까, 다시 분연히 일어설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다 이 모든 것은 고양이 팔찌 때문에 터지기 시작한다. 어린 딸아이가 고양이 팔찌를 찾기 시작하고 그건 강도 두 명이 돈을 훔쳐갈 때 같이 쓸려간 것이라고 허치는 생각한다. 강도 두 명은 이제 허치 손에 작살이…아니 혼나게 될 터이다.

 

그런데 일은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게 된다. 남녀 강도 두 명이 사실은 영세하게 사는 인간들이고 어린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허치는 자제력을 되찾고 돌아서지만 마침 버스 안에서 깽판을 치는 일군의 깡패들을 완전히 작살…아니 제압하게 되는데 그 중 한 명이 미국과 러시아에서 알아주는 최악의 마피아 중간 보스의 막냇동생이다.

 

고양이 팔찌를 찾으러 갔던 허치는 이제 거악(巨惡)과의 한판 아니 대판 싸움을 벌여야하는 상황이 된다. 근데 이 인간 허치, 왠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치=밥 오덴커크’의 액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할리우드의 모든 액션을 다 뛰어넘는다. 리암 니슨의 ‘테이큰’은 이제 완전 올드 맨의 것이 됐다.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의 명성에도 흠이 갔다. 댄젤 워싱턴의 ‘이퀄라이저’도 심심해 보일 정도다. 샤를리즈 테론의 새로운 액션 ‘올드 가드’는 여기에 비하면 애들 수준이다.

 

밥 오덴커크의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지금 어느 수준과 수위까지 갔는 가를 보여준다. 영화와 영화의 테크놀로지가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지루하고 심심한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생활에서, 그 일상의 ‘압제’에 짓눌린 현대인들 모두가 일탈의 욕구와 욕망을 지니고 있음을 후련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성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가정 내에서 가장들을 너무 왕따시키지 마시기를. 다들 큰일을 할 인물들이다. 자경단을 해서라도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현대사회 가장의 위기를 우회적으로 그리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 점이 인상적이다. 아 참. 영화 내내 나오는 OST 음악이 최고다. 팻 베네타의 ‘하트 브레이커’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모두들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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