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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도록 풀리지 않는 '차등벌금제'…이번엔 다를까

 

'차등벌금제'가 이슈메이커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인해 다시금 정치권 내에서 주요 쟁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차등벌금제는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경제적 약자보다 부자에게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 지사는 “현행법상 세금과 연금, 보험 등은 재산과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게 내고 있지만, 벌금형은 총액벌금제를 채택하고 있어 개인의 형편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부과하고 있다”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산비례벌금제(차등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수면으로 가라앉은 차등벌금제를 다시금 물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의 5만원과 수백억 자산가나 억대 연봉자의 5만원은 제재효과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며 “하루 몇 만원 버는 과일행상의 용달차와 고소득자산가의 취미용 람보르기니의 주차위반 벌금 5만원이 같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각에서 재산비례벌금제의 명칭에 대해 지적하며 차등벌금제에서 재산은 제외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재산비례벌금, 소득비례벌금, 소득재산비례벌금, 경제력비례벌금, 일수벌금 등 명칭이 무슨 상관인가”라며 “벌금의 실질적 공정성 확보 장치인 만큼 명칭 논쟁도 많으니 그냥 ‘공정벌금’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윤희숙(국민의힘·서초갑) 의원은 경제적 효과에 부동산 등 재산이 포함된 재산비례벌금제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윤 의원은 “국가에 내는 세금이나 벌금은 소득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소득에만 매기지 않고 재산까지 고려하는 것은 개념의 문제일 뿐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 극심한 갈등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민 국회의원(더민주·논산시계룡시금산군)은 “이 지사가 다시 공론에 불을 붙였는데 최근 나온 공정벌금제라는 명칭도 좋다고 본다”며 “공정벌금제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벌금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사실상 선처”라며 차등벌금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핀란드는 지난 1921년부터 수입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차등벌금제인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저생계비를 공제한 액수를 일일 벌금액으로 삼는 방식으로 벌금이 부과된다. 안시 반요키 노키아 전 부회장은 시속 50㎞ 제한구간에서 모터사이클을 시속 75㎞로 몰았다는 이유로 연봉(1400만유로)의 14일치에 해당하는 11만6000유로(1억4300만원)를 범칙금으로 부과받았다.

 

핀란드를 포함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는 1900년 초반에, 독일·프랑스 등도 1900년 후반에 경제력에 따른 차등적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경제 사정과 관계없이 동일한 범죄에 같은 벌금을 내는 총액벌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동일한 벌금이 궁극적으로는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재산비례 벌금제에 필요성이 대두돼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차등벌금제를 꺼내 들었던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이를 바탕으로 장관 취임 당시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추진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2019년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 등이 담긴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방안’을 발표하며 제도화에 나섰지만, 조 전 장관의 사퇴와 법조계의 반대, 법제화 무산 등으로 인해 제도화가 좌초됐다.

 

이후 소병철 국회의원(더민주·순천광양곡성구례갑)이 지난해 12월 17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차등벌금제 법제화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

 

소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로 벌금형이 자유형의 부정적 영향을 없앨 뿐만 아니라 재산 박탈의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 적합한 형벌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현행법은 총액벌금제를 채택하고 있어 동일한 벌금형이 선고될 경우 경제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자력에 따라 형벌로써의 효과를 달리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에, 벌금형을 일수와 일수정액으로 분리해 일수는 양형기준에 따라 행위자의 불법과 책임을 표시하고, 일수정액은 피고인의 경제사정을 고려해 결정하게 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정당한 벌금형을 정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주요 내용으로는 ▲일수벌금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되 법인 또는 단체에 대해는 총액으로 벌금을 과할 수 있도록 한다. 벌금형의 일수는 1일 이상 3년 이하로, 일수 정액은 1000만원 이하로 하고 일수 정액을 정함에 있어 피고인의 자산과 1일 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하되, 판결 당시 피고인의 수입과 재산상태, 유사 직종 종사자의 평균 소득, 부양가족 및 최저생계비 등을 고려하도록 한다.(안 제45조) ▲노역장유치에서 벌금형의 유치기간을 벌금형의 일수에 따르도록 한다.(안 제70조)

 

이 법률안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형법상 책임주의에는 ‘형의 양정(量定)은 그 책임에 대응해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를 근거로 동일한 죄에는 같은 벌을 적용해야 하기에 경제적 형편에 따라 벌금이 매겨진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해 차등적으로 처벌을 한다는 것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차등형벌제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형법 개정이 필요하며 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기준에 소득만을 넣을 것인지, 재산을 포함해 벌금을 책정할 것인지에 대한 척도 마련 또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덧붙여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가 큰 비중을 차지함에 따라 차명 재산이 많은 국내의 현실상 범죄인의 소득과 재산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 제도 도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 또한 제도화 무산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돼왔다.

 

이러한 장애물로 인해 차등벌금제와 관련된 법안은 지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18대 1건 ▲19대 4건 ▲20대 2건 등 총 7건이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인해 법안이 폐기됐다.

 

공론화의 중심에 선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제도화로 안착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경기신문 = 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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