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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37. 경안천의 무지개 다리 ‘경안교’

 

광주시 중심부를 지나 한강에 합류하는 경안천은 용인시 처인구 호동 용해곡 부근 계곡에서 발원하여 모현읍을 지나 광주 오포읍과 경안동 일대를 지나면서 몇 개의 지류를 모아 북쪽으로 흘러 분원리에서 한강을 만난다. 기록마다 京安, 慶安 등 한자 표기가 다른데 옛날 기록은 대부분 慶安으로 전해온다.
 
경안천에는 ‘경안교’가 있었다. 1847년 홍경모가 편찬한 ‘중정 남한지’를 보면, 고려의 김방경(金方慶, 1212~1300) 장군이 경안교를 축조하고 돌로 무지개처럼 둥근 홍예(虹蜺)를 만들어 제법 웅장한 모습을 갖추었다. 다리를 놓을 때 연못에 사는 용 가운데서 성격이 사악하고 거친 독룡(毒龍)이 거친 비바람을 일으켜 공사를 방해하여 준공할 수 없었는데, 묘회암(妙會庵)에서 온 신승(神僧)이 물속으로 들어가 용과 한참 동안을 싸웠다. 마침내 피가 물위로 떠오르더니 중은 돌아가고 마침내 다리가 완공되어 이 공적을 비석에 새겨 다리 옆에 세웠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김방경은 토목공사에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평안도 앞 바다에 위도(葦島)가 있는데, 10여 리나 펀펀하여 농사를 지을 만하나 조수(潮水) 때문에 개간하지 못하더니, 김방경이 명령하여 수레 두 대가 나란히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둑을 쌓게 하여 곡식을 심었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무척 원망했지만, 가을이 되어도 육지의 몽골군은 물러가지 아니하고, 섬에는 풍년이 들어 그 덕으로 살아났다. 섬에 우물이 없어서 육지로 물길러 갔다가 때때로 사로잡혀 가므로 방경이 연못을 만들어 빗물을 모아 여름에는 물을 길어 쓰고, 겨울에는 얼음을 뚫어서 사용하니, 비로소 그의 지혜에 승복하였다. 경남 밀양의 ‘수산제(守山堤)’는 둘레가 20리인데, 김방경이 이 뚝을 쌓아 밭에 물을 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한 군량미를 생산하였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크게 패하여 남은 50~60기(騎) 정도를 이끌고 경안교로 도망가 쉬고 있을 때, 정충신이 27기를 인솔하고 추격하자 적들이 바라보고는 후속 부대가 또 있는가 싶어 일시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괄ㆍ한명련은 밤을 이용하여 이천으로 도망쳤는데, 그들의 부하였던 이수백ㆍ기익헌이 두 역적의 목을 베어 행재소에 바쳤다.
 
정조 임금이 1779년에 여주의 효종 영릉(寧陵)에 참배하러 오갈 때 경안천에 이르러, "냇물이 넓고 다리가 길어 수리하는 일이 반드시 적지 않았을 텐데, 민간에 폐해를 끼침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하니, 승지 이의익이 아뢰기를 "여러 읍(邑)이 힘을 합쳐 수리했기 때문에 별달리 민간에 폐해를 끼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경안교는 김방경이 축조한 옛 모습은 없어졌어도 계속 정기적인 보수를 해 왔다. 분원에서 도자기를 공급하던 공인(貢人) 지규식(池圭植)이 고종 28년(1891)부터 1911년까지 20년간 남긴 ‘하재(荷齋)일기)’에 보면 1896년 9월 6일, 1901년 9월 7일, 1904년 9월 2일, 1905년 9월 20일, 1908년 9월 20일, 1909년 8월 28일 등 주로 9월에 마을사람들이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해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경안교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2등 도로였고, 1936년에 대대적으로 교량을 건축한 공사 관련 서류와 도면이 남아 있다.
 
김방경이 쌓은 옛 경안교 석재와 고려 말에 세운 비석이 지금도 경안천 자갈 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경안교 무지개 다리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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