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전세자금보증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이어 HF까지 보증 한도를 줄이면서 수도권 전세대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예방이라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저평가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 보증 제한은 정책적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HF는 28일부터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 합계가 공시가격의 126%를 넘으면 보증을 거절하기로 했다. 법인 임대인은 80%를 초과할 경우 불가하다. 기존에는 임차인의 소득·신용이 핵심 기준이었지만, 앞으로는 주택가격이 심사에 직접 반영된다. 주택가격 산정은 실거래가가 아닌 ‘공시가격의 140%’가 기준이다.
문제는 공시가격 자체가 낮게 책정돼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5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 3.65% 상승에 그쳤다. 수원시의 경우 토지 기준 공시지가 상승률이 2.78%로, 경기도 평균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수원 장안구는 2.32%, 권선구 2.68%, 팔달구 2.60%, 영통구 2.18% 오르는 데 그쳤다.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간 괴리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이를 대출 심사 잣대로 삼으면 전세대출 문턱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원시 권선구에서 원룸 12가구를 임대하는 A씨는 총 12억 원의 보증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해당 주택의 공시가격은 5억 5000만 원에 불과하다. HF 기준을 적용하면 보증금과 채권 합계 한도가 6억 9300만 원으로 제한된다. 이미 선순위 채권 10억 원이 설정돼 있어 신규 세입자는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A씨는 “결국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원처럼 원룸·다가구 수요가 많은 지역은 세입자 70~80%가 HF 보증을 이용한다”며 “공시가격 저평가로 대출이 막히면 신규 세입자 유입이 끊기고 기존 보증금 반환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세 부담 완화를 위해 공시가격을 낮게 유지해온 상황에서, 그 수치를 다시 대출 제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정책적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억제 기조 속에 보증까지 막히면 수도권 전세대출은 사실상 단절된다”며 “실거래가 반영률을 높이고, 일정 유예기간을 두는 등 연착륙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박민규(민주·서울 관악구갑) 의원은 “급격한 변화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며 “시장 충격을 줄이려면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현실화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