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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청소년은 누구일까

 

다사다난했던 5월이 지나갔다. 5월은 어린이 주간과 청소년 주간이 함께 있는 달이다. 때문에 많은 관련 행사들이 있었고, 또 일부 행사는 국민장 기간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어렵사리 지나간 5월을 되돌아보며, 그 5월에 반짝 주인공이었던 청소년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간발달의 단계를 얘기하고, 또 그 ‘결정적인 시기’로서 청소년(靑少年)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청소년은 지극히 근대적인 존재이며, 근대적 사회에서 설정된 ‘새로운’ 인간발달 단계의 하나이다. 여기서 근대적이라고 한 것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 그리고 그에 따라 진행된 새로운 질서 형성을 위한 사회변화의 논리가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새로운 존재 개념과 관련해서 볼 때 근대적이라는 말은 특히 공교육이 국가의 주요 정책영역이 되고, 이에 따라 학교교육이 중요한 사회기관으로서 제도화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근대적 사회의 형성은 공교육으로서의 학교교육이 연장되는 과정, 특히 중등교육의 보편화와 관련하여 어린 아이(幼)와 어른(長)으로만 구분되던 인생 주기에 ‘유예자’로서의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 이제는 일상의 용어가 되어버린 청소년이라는 존재, 그 말 속에는 근대사회의 속성과 그 속성의 확장에 기여하는 학교교육의 본질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청소년이란 용어는 청년과 소년의 합성어로서 부모에 의존된 아동기로부터 자립적인 성인기로 이행되는 과도기에 처한 사람을 뜻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이해된다. 여기서 ‘소년’이란 의미는 아주 어리지도 않고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아이로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를 말하며, ‘청년’이란 말은 젊은 세대나 청장년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로서 소년보다 나이가 든, 주로 대학생 정도 연령대의 사람을 의미한다.

청소년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로 먼저 ‘10대’(teenagers)를 들 수 있는데, 이는 10세에서 20세 미만의 연령층으로서 일반적으로 미숙한 집단의 세대를 지칭한다. 또한 ‘미성년자’라는 말은 주로 법적인 용어로서 지능이나 신체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성인으로 취급되지 않는 연령층을 뜻하며, 사회에서 법적 행위를 하려고 할 때 보호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연령 계층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은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명확하게 개념화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막연하게 쓰이고 있거나 가변적인 법적 연령 기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용어들은 별 차이 없이 혼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국의 주요 시기마다 등장하는 주제가 된 한동안 선거연령 논의를 보자. 그 논의는 대개 정파의 이해와 관련하여 된다 안된다 식으로 진행된다. 다른 예를 보자. 민법 개정안에서는 성년의 연령 기준을 만20세에서 만19세로 낮추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면 미성년자들은 1년 빨리 어른, 즉 단독으로 법률적 행위를 할 수 있고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연령을 기준으로 한 사회적 권리의 제한은 사회적 인식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다. 이러한 막연한 수준의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사회적으로 유예되는, 그리고 그 유예기간을 효율성으로 담보하고자 하는 근대적 논리에 따라 사회적 보호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청소년이라는 용어 이해에 담긴 이 막연함이 함의하고 있는 존재 형성의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가 이 시점의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 헤어날 수 없는 혼돈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학생과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같은 자애(慈愛)적인 수사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을 잃어가는 근대 이후 학교교육 제도가 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방치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청소년이라는 당연시되는 존재가 누군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지금의 기준으로는 청소년일 수밖에 없는, 하지만 결코 그 당시 청소년으로서 살지 않았을 근대 이전 연소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은 지금의 청소년과 어떻게 다를까? 이를 단서로 우리가 지금 청소년에게 적용하고 있는 기준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것은 모두 타당한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속에는 청소년 바로보기의 한 시도와 함께 지금의 학교가 만들어진 과정에 숨겨 놓은 어른 사회의 이율배반이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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