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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쓸데없는 자존심

 

며칠 전,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름 아닌 혼수(婚需)문제 때문에 자존심(自尊心)이 상(傷)해서….

자존심이라?…,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자존심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자존심이란 본시 추상적이며,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고집(固執), 아망 이런 말로 바꾸고 쉽게 마음 편해질 수 있는데….

앞길이 창창한 청년의 죽음을 깊이 살펴보지도 않고, 한마디로 단정한다는 것은 지나친 독단(獨斷)이란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해도, 이건! 이건! 분명 쓸데없는 자존심이다.

눈물 빼는 쓸데없는 자존심 이야기가 기억난다. 우리나라가 아니고 베트남 이야기, 이제 그 나라에서는 설화(說話)가 됐단다.

전쟁이 나자 젊은 남편은 임신(姙娠)한 젊은 부인을 고향에 두고, 전쟁터에 나갔다. 몇 년 후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동리 입구에 아내를 발견하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더구나 옆에는 아기를 데리고, 살아 돌아 온 것을 하늘과 조상에 감사했다.

전쟁터의 참혹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조상들에게 신고하려고 아내에게 필요한 제사음식을 사오라고 한 후, 어린 자식과 마주 앉았다.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고개를 저으면서 거절했다.

“아저씨는 저의 아빠가 아니예요. 우리 아빠는 매일 집에 오셔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끔 울곤 했어요. 엄마가 누우면 아빠도 눕고요.”

기가 막혔다. 아내의 부정(不貞), 그리고 배신(背信), 치를 떨었다. 자연히 술을 마시고 황폐(荒弊)해졌다.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려고 해도, 얼굴을 마주하면 누군지 모를 정부에 대한 자존심과 적개심이 사람을 분별없게 만들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 못하고, 강물에 뛰어 들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남자가 등잔에 불을 붙이자 그때 어린아이가 소리 쳤다.

“여기 아빠가 있어요.” 아이는 벽에 비친 아빠의 그림자를 가르쳤다.

어느 날 밤 아이가 아빠는 어디에 있느냐고 칭얼대자 그림자를 가르치며 “이것이 네 아빠란다.”

아빠는 매일 밤 저렇게 와서, 엄마와 밤새도록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울기도 한다. 그림자는 따라 할 수 밖에, 엄마가 누우면 그림자도 눕고….

아마, 눈물을 보인 것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남편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하소연 한 것이 분명하다.

(혹시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장황했다면 독자들에게 이해 부탁드린다.)

이 슬픈 이야기의 바탕에는 자존심이 깔려있다.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아이가 말하기를…, 그 남자, 도대체 누구요?” 혹은 아내가 남편에게 “왜 나를 멀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은 자존심을 걷어내야 한다. 서로가 지금의 고통스러움을 이야기했더라면, 이 애절한 비극은 결코 완성 될 수 없다.

우리 나이는 어릴 때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존심을 꺾는 것을 보고 자랐다.

걸핏하면 자식이 있어도 언성을 높이고 심지어 주위에서도 가뭄에도 나라님 탓하는 것처럼 대소(大小)의 불상사(不祥事)에도 어처구니없이 집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러나 시대가 달라 요즘 어머니가 아버지의 자존심을 꺾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자란다.

뾰족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친구의 넓은 아파트 평수(坪數)를 부러워하고, 자동차의 배기량(排氣量)을 비교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학업성적까지 아버지의 탓으로 돌리는 가정도 가끔(?) 있단다.

유식(有識)한 척 해서 인용을 하기 싫은데 레미제라블에서도 궁핍은 어릴 적 유모(乳母)라고 했는데….

없는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다. 죄로 말하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훨씬 크다. 그러나 간 빼고, 쓸개 빼고 하는 것과 자존심은 깊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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