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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이 국민들의 뜨거운 피를 위한 교육

 

“넌 왜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안 하니?”

 

“……”

 

“난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어”

정색을 한 아빠가 어린 딸을 세워놓고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대견한 그 모습에 ‘가정교육, 예절교육이 실종됐다지만 잘만 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될 텐데….’ 그런 생각까지 해봤다. 극한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킨다는 일본의 국민성이 세계를 놀라게 한 이달 중순 어느 날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대지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선 인간의 과학기술과 그것으로 이룩한 문명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거의 장난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배도 건물도 자동차도, 인간이 애써 만들어놓은 온갖 것들이 바닷물에 뒤엉켜 밀려오는 현장의 공포가 ‘생중계’된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끔찍한 것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파손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줄 알았던 문명이 오히려 대재앙의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위안을 느끼게 하는 장면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의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일본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의 침착하고 의연한 자세와 인내심, 질서의식은 경이로운 것이었다. “이런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일본”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일본”이라는 찬사가 이어졌고, 현장의 한 외국인은 “지구 종말의 날이 있어야 하고 그 순간이 이런 상황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라고 했다.

평소에 훈련하듯 대피소로 향한 초등학생들도 그렇지만, 추위와 굶주림, 위기의식 속에서도 사재기·약탈·새치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유소·슈퍼마켓·화장실, 어디서든 줄을 서고, 내려앉은 도로에서조차 파란불을 기다리고, 구조된 후에도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하는 시민의식에 대해 세계의 언론은 한결같이 그 절제·준법·질서·배려를 존중하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공중도덕과 질서를 강조하는 그들의 가정교육·사회교육·학교교육이 오랫동안 조화를 이뤄온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교육이란 결코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또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서양에서 자유와 평등을 ‘신앙‘으로 하는 것만큼 일본인들은 질서를 ‘신뢰’하고 있다고 한 루스 베네딕트(1946, <국화와 칼>)의 설명을 증명했다.

중요한 사실이 또 있다. 그것은 불행을 맞은 일본을 조건 없이 돕는 우리 국민들의 믿음직스럽고 너그러운 마음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침략기의 그 고난, 무고한 재일동포 수천 명이 고의적인 유언비어로 학살당한 관동대지진, 어처구니없는 독도문제 같은 건 제쳐두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먼저 ‘원조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일본 시민들의 재난 대처 모습을 각 학교별로 ‘계기교육’에 활용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 교육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에 처한 일본을 남보다 먼저 돕고 싶은 만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우애정신은 결코 일시적 ‘과잉’ 같은 게 아니라 이웃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우리도 저들과 같은 시민의식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어린 딸을 꾸중하던 저 멋진 아빠의 요청에 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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