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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낙화잡설(落花雜說)

 

봄이 창창(蒼蒼)이다. 거리마다 희거나 분홍의 여신들이 처처화신(處處化身)하셨다. 하여, 시 한 수 드린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落花)/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 ‘낙화’ 全文)

모든 것이 그렇듯 필 때보다 질 때, 태어날 때보다 죽을 때, 다가올 때보다 떠나갈 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칭송했는지도 모른다. 한 세상 살다가 가볍게 떠나는 법, 그 중요함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다른 것이어서 떠남에 대한 두려움과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이 필부(匹夫)의 본능이겠다.

일찍이 법정 스님은 자신의 글 모음 ‘무소유’에서 소유와 집착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친분 있는 사람에게 난(蘭) 한촉 선물 받는다. 꽃이라도 피울까, 기대 때문에 설렌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떠나게 됐다. 내딛는 걸음마다 ‘난(蘭) 걱정’이다. 물을 주고 가꿨던 사랑이 걱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길 떠남을 포기하고 난을 돌려준다.’

애정이 깊을수록 집착은 배가 된다. 하물며 삶이야. 살면서 쌓아놓은 것이 많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가진 것을 잘 놓지 못한다. 사회적 지위가 그렇고 재물은 더하다. 권력은 더욱 심하다. 오죽하면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않는다’고 할까. 그 맛 또한 마약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만큼 치명적인 유혹을 품고 있다는 뜻일 게다. 나처럼 변방을 떠도는 삶이야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알량한 권력에 취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윤흥길 선생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이를 잘 풍자하고 있다. 완장과 죽창만 쥐어주면 천하를 다 얻은 듯한 착각에 빠져 살다가 결국 그 죽창에 찔려 생을 마감하는 인간군상들의 슬픈 인생사다.

발우(鉢盂)와 남루한 옷 한벌만 남기고 훌쩍 입적(入寂)한 고승(高僧)들의 삶은 이런 인생들에게 주는 죽비(竹扉)다. 그러나 죽비가 천(千)이면 무엇 하겠나, 욕심 하나 누를 수 없으니. 물질이 많을수록 영혼이 비어가니, 그를 경계하라던 눈 밝은 구루(Guru)들의 가르침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얼마 전 CEO들의 수백억원에 달하는 연봉이 공개됐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역풍이 불어 기업들이 반납이라는 쇼를 벌일 정도니 말이다. 가진 것은 쉽게 놓지 못한다. 재벌이나 기업의 CEO라면 더욱 그렇다. 항아리 안에 든 사탕을 한 움큼 쥐고 결국 손을 빼지 못해 사람들에게 잡힌 원숭이 이야기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인간들의 헛된 욕망을 비웃듯 자신이 누리던 부귀영화를 툭, 던져버린 사람이 있어 눈길을 끈다.

‘2∼3년 안에 맥주시장 1위 자리를 되찾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제는 전(前)이 된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이야기다. 언론에서는 ‘비장의 카드’라는 표현을 썼다.

문학에서 비장은 이런 의미다. ‘있어야 하는 것과 있는 것이 서로 거부하는 갈등의 관계를 이루면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있는 것을 부정하는 미의식.’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도전하려는 마음 자세, 뭐 이쯤으로 해석되겠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다. 그런 결정을 내린 속내야 잘 알 수 없지만 외연(外緣)만으로도 아름답다.

봄날 피고 지는 꽃을 보면서 나는 언제 떠나는 것이 가장 ‘나 다운’ 결정일까, 생각한다.

완장차고 깝치는 저들처럼은 살지 말자, 라고 스스로 다지는 4월이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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