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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메밀꽃 필 무렵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한 대목이다.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로 불리는 소설 속 이 문장 덕분에 해마다 수 십 만 명의 관광객이 강원도 봉평을 찾는다. 또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깝고, 한국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밤길로 꼽히는 이 구절에 힘입어 해마다 9월이면 전국에서 인파가 몰리는 문화축제도 펼쳐진다. 달빛과 메밀밭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예술의 짙은 향기를 불어넣은 이효석의 문학적 감성 덕분이다. 봉평에서 태어나 36세 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했지만 서른살 때 발표한 이 소설을 통해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평범하게 비칠 수도 있는 고향을 돋보이게 만든 그의 재능이 감동을 불러 오고 있는 것이다.

늙은 장돌뱅이 허생원이 20여년전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해 찾은 메밀밭, 밤길에 동행한 젊은 동이를 친자로 확인하는 현장, 그를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흥정천, 허생원이 처녀와 사랑을 나누던 물레방앗간, 80년이 지난 현재도 소설속과 똑 같이 재현된 그곳에 요즘 달빛과 소금을 뿌린듯 한 메밀꽃의 흐드러진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일부터 어제(11일)까지 열흘 동안 축제도 열려다. 한 끼 식사로도 거뜬한 메밀국수부터 무 배추 고기를 넣은 메밀전병, 메밀부침, 메밀묵까지 다양한 요리의 향연도 함께 펼쳐졌다.

뇌척수막염으로 숨진 1942년 이후 모친 묘소인 용평면, 파주소재 함경도 실향민들의 동화경모공원등을 부평초처럼 떠밀려 다녀야 했던 그가 고향 봉평에 영원히 묻힌 건 지난 2014년이다. 이번 축제 기간 동안 강원도는 그를 기리는 효석문화제를 평창올림픽의 문화 아이콘으로 삼기로 했다고 한다. 하찮을 수도 있는 고향의 메밀꽃까지도 감동의 대상으로 승화시킨 이효석의 ‘문학적 힘’을 다시 한 번 느낀다./정준성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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