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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하늘바라기

 

하늘이 떴다. 좀처럼 뜨지 않던 하늘이, 내리천 둑방길 걷다 문득 올려다 본 그곳에 구름 몇 장 흩뿌리며 환하게 떠올랐다. 쪽빛 뚝뚝 떨어져 내릴 듯 청아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저 가을 하늘을 마주하면 나는 영락없이 아이가 되고 만다. 만 가지 말을 머금고도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 한없는 품을 갖고도 자랑하지 않는, 늘 그 자리 지킬 줄 아는 어버이 같은 저 하늘을 나는 참 좋아한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늘의 낯빛은 마치 사람과도 같다. 오늘처럼 만삭의 알곡들을 지천으로 흩뿌리고 샛길, 둑방길, 산 언덕배기 드문드문 코스모스 꿈인 듯 뿌려놓은 가을이면 점잖게 높이 떠 빙그레 웃고 있다. 마치 그 옛날 가을걷이 한창인 논밭을 뒷짐 지고 걸으시던 아버지처럼 말이다. 꽝꽝 언 도심을 회색으로 기웃거리던 겨울 하늘은 봄 더불어 화색이 돌다가 여름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에 맞서 대지를 보살피느라 낮게 부산을 떠는 듯도 하다. 마치, 갈등에 시달리다 뿜어내는 한숨같은 비, 우르르 쾅쾅 한꺼번에 쏟아내는 그 날 그 하늘은 감히 바로 보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 우두커니 보게 된다. 마치 성난 아버지의 낯빛처럼 그렇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먼저 손 내밀고 먼저 마음 열어야 한다.”

부모님 떠나 처음으로 혼자 자취생활을 시작하던 어린 나에게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말씀이었다. 그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어쩌면 나는 가장 하늘과 친했는지도 모른다. 죄다 알 수 없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어쩌면 하늘이었던 것 같다. 하루의 다짐도, 서러움도, 그 결과도 하늘을 통해 힘을 얻고 새롭게 마음 다지고, 열정을 쏟아내고, 좋은 결과에 스스로 칭찬하며 마음을 키웠었다. 자취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 사이, 그 작은 틈으로 머리를 내밀고 올려다 본 하늘. 그 변화무쌍한 하늘은 어린 내 마음을 키워주기에 충분하였던 같다.

“나를 찾고 싶었어. 지금까지 나는 껍데기뿐이었어. 그래서 알맹이를 찾으러 온 거야.”

27년간 이민을 가 있던 친구가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한 학기만이라도 나를 찾으러, 잃어버린 내 알맹이를 찾기 위해 문학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 아이들 키우고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다 보냈다는 그 친구.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늘을 볼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늘은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온전히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알람소리에 맞춰 눈을 뜨고, 출근을 하며, 빌딩사이로 뱅글뱅글 도는 일상에서 나는 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간혹 올려다본 하늘이 있다면 그건 모나고 조각난 하늘이었다. 작은 창문만큼의 하늘, 건물과 건물 사이의 직각으로 꺾인 좁고 아득한 하늘, 사람과 사람사이의 틈으로 올려다 본 그 하늘은 늘 쫓기는 내 마음보다 더 바빴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마음을 닫고 올려다 본 하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등 굽은 모습으로 나란히 걷고 있는 저 노부부의 평온한 걸음에도, 유모차 안 방긋거리는 저 새순 같은 어린 아가의 미소에도 동행하는, 마음만 따뜻하다면 어떤 모습이어도 허락되는 저 하늘, 온전히 닮을 수 없다면 함께 하고 싶다. 간혹, 하늘 올려다 볼 마음 문 활짝 열어놓고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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