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상]남한산성의 명분과 실리
[자치단상]남한산성의 명분과 실리
  • 경기신문
  • 승인 2018.01.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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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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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원기 신한대학교 공법행정학과 교수

작년 개봉되어 나름 흥행에 성공한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는 조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임금과 신하들의 복잡한 심경과 내·외부 상황을 그린 작품이었다. 영화는 특히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두 인물을 대비하며 스토리를 전개하였다. 역사 소재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사실과 허구를 동반한 면이 있다.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도 그런 트랜드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 듯 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영화의 작품성은 차치하고라도, 두 인물을 통해 본 명분과 실리는 작금의 정치상황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궁금하였다.

일단 영화 속 두 인물을 살펴보면, 먼저 최명길은 임금의 의중을 꿰뚫어 보면서 최대한 실리를 추구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반면 김상헌은 성리학적 명분론과 의외의 요행수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적어도 필자는 두 사람을 그렇게 보았다. 전란이 터지자, 최명길은 임금에게 병란 초기 호미로 막을 방책을 조심스럽게 진언한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요구대로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서둘러 큰 전란을 막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자식을 보내는 일에 주저하고, 어떻게든 요행적인 일을 기대하였다. 임금도 김상헌도 갖고 있던 요행수라는 것은, 명나라가 청나라 뒤퉁수를 쳐주는 일과 조선 내 여러 성에서 청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청나라 뒷퉁수를 치는 일도, 조선내의 각 성의 군사들이 청군의 보급로를 끊는 일도, 청군을 격파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한산성 안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와 무력감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였다. 항전을 강력히 주장하던 김상헌도 대세가 기울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현실과 다르게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결국 인조는 역사적으로 가장 치욕적으로 여겨지는 삼전도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치욕적인 항복 결과로 인해 당시의 협상파를 두둔하고 항전파를 매장한다면 또다른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병자호란 당시 항전 한 번 안하고 지레 항복하였다면, 그 또한 두고두고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어쩌면 국론이 분열되고 책임론까지 불거지는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전은 철저한 준비와 실력이 있을 때 감행해야 하는데, 당시 상황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렇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 항전의 명분은 좋아도 실력 없는 항전은 참혹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뿐이다. 병자호란의 참상이 지금도 뼈아픈 것은 맹목적인 자기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미처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또 다른 인물인 최명길은 전란 후에도 철저한 실리주의로 일관하였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란 이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조선군의 파병을 요청할 때도 청을 설득하는데 집중하였다. 항복과 군대파병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조선의 피폐된 상황에 파병불가를 역설하였다. 결국 조선군 파병도 막고, 인질로 잡혀간 백성 일부도 송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회한을 곱씹고 눈물만 흘렸지, 이를 갈며 국력을 강화하는 면에서는 치열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일본에 저항한번 못하고 합방당하는 수모를 겪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남북분단의 현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작금의 우리 상황은 병자호란 전후의 상황과 별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위치가 지각변동이 되어서 태평양으로 옮기지 않은 이상 이런 유사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정신적 물리적 변화이며 준비태세이다.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여전히 조정하며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것은 거의 영구적인 과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부터 씨름하게 될 위안부합의문의 한일간 재논의 불씨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과의 온전한 국교회복 문제, 미국과의 북한핵 문제해결 등 국제적인 것은 물론이고, 국내적으로도 올바른 방향의 적폐청산, 계층간 격차완화, 실업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명분과 실리의 조화선상에서 해결접점을 찾아야 한다.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렵기에 수백, 아니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새해 무술년은 남한산성의 고달픔을 영구히 없애는 원년으로 시발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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