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07635915
/이난희
새벽안개는 흰 도화지를 닮았다
포클레인 한 대가 지붕을 덮친다
벽돌 공장이 무너진다
오줌을 누던 인부가 쌍욕을 하며 뛰쳐나온다
봤지
붓질은 이렇게 하는 거야
속도감 있게
강렬하게
움푹 파인 공장 웅덩이에
순식간에 완성된 그림 한 점이
새로 걸린다
아무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난희 시집 ‘얘얘라는 인형’
폐업률이 높아가고 있다. 그에 따른 실업률 또한 치솟아 가고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지속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폐업하는 것은 쉽다. 포클레인 한 대가 지붕을 덮치면 그만이다. 속도감 있게 붓질을 하듯 강렬하게 공장을 무너뜨리면 되는 것이다. 그 앞에서 인부들은 힘이 없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른 채 오줌을 누다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쌍욕 한마디 내던지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렇듯 움푹 파인 공장 웅덩이에 순식간에 완성된 그림 하나가 새로 걸리듯 요즈음 우리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목 좋은 상가조차 관리비도 못 내고 있다는 조간신문기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아무 걱정 없는, 모두가 잘사는 날은 언제인가. 아무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내용의, 이 독특한 제목의 시를 그냥 읽어 넘겨버릴 수 없음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