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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구멍 속의 방

구멍 속의 방

                            /성향숙



여자가 구멍을 통해 밖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처럼 눈부신 사물들이 둥둥 떠 있다



정지된 방 안의 시간을 이리저리 굴리며 여자는 밖의 풍경들을 재단한다. 그늘 영역 넓히는 정자나무 아래 소란스런 몇 명의 아이들, 철조망 줄줄이 붉은 꽃들, 벌 떼처럼 가벼운 장미 꽃잎이 골목의 소음이 된다 마른 국숫발 햇살이 두꺼운 구름 뚫고 양철 판자 지붕 위로 떨어진다 노란 현기증이 대지에 가득 퍼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틀거리는 풍경들

겹겹의 주름 속에서

붙었다간 흩어지고 흩어지다 다시 달라붙는,

여자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깜깜하다



단칸방 창문에 격자 한 칸만큼 덧붙인 쪽유리,

안쪽에 눈동자가 매달려 있다

작은 유리 구멍 속에는 엉덩이로 걷는 여자가 산다

-시집 ‘엄마, 엄마들’

 

 

저 쓸쓸한 독거의 아득함이라니! 구멍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칩거를 함의한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아슬아슬한 시간의 다른 이름이며 언젠가는 닫히고야 말 눈꺼풀처럼 허무한, 최소한의 소통공간이다. 그러나 유폐된 삶에서의 구멍은 전 우주에 다름 아닐 것, 엉덩이로 걷는 여자에게 구멍 밖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시인의 진술이 가능케 된다. 이 상황에서의 그녀의 세계는 우리가 늘 보아온 평범한 일상, 심상(尋常)한 풍경의 흐름이 놓치고 싶지 않은 절대적 순간 아닐까? 그러므로 정자나무도 뛰노는 아이들도 장미꽃잎마저도 골목의 소음으로 확장되는 사건 아닌 사건이 되는 것이다. 저것이 어디 그들 몫의 아픔일 뿐이랴. 미구에 닥칠지도 모르는 인간 모두의 보편적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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