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의리 없는 대통령
[경기시론]의리 없는 대통령
  • 경기신문
  • 승인 2019.05.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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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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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택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오호택 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얼마 전 ‘으~리’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주변에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데, 보통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유·무언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도리나 약속은 더 큰 집단에 대한 의리에 흡수되어야 한다. 구국의 대의 앞에 친구간의 의리는 접어야 하는 식이다.

정치권에 ‘집토끼 산토끼’ 비유가 있다. 당장은 집토끼, 즉 지지층을 공고히 해야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려면 산토끼, 즉 중도파나 반대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당연히 변신과 타협이 필수다. 확실한 우파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등 좌파정책을 가미하여 당선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졌고 결국 탄핵으로 몰락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것도 지지자들에 대한 ‘의리’였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집권 3년차인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집토끼와 산토끼 중 누구를 잡아야 할까? 정답은 ‘모든 토끼’다. 선거는 끝났고, 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지난 대선의 유권자 비율은 82.1%, 투표율은 77.2%, 문대통령 득표율은 41.1%였다. 유권자의 31.7%, 전체 국민의 26.0%만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도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다.

탄핵으로 만들어진 선거에서 적폐청산과 공수처 등을 공약한 것은 옳다. 하지만 공약이 당선 이후 국정운영의 절대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한반도대운하 공약을 실현하려다 자기 함정에 빠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기하자. 공약은 반대당을 포함하여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전문가의 손에서 다시 치밀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패스트트랙 이후 한국당의 장외투쟁으로 국회는 공전하고 있다. 추경안 등 민생현안은 쌓여만 가는데, 공전사태를 민주당이나 한국당이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 정당들의 대립과 반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정치부재의 현 상황을 풀 유일한 존재는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5당대표회담을 제안한 채 일대일 회담을 원하는 한국당과 실랑이 중이다. 일대일, 5당대표회담의 순서를 가지고도 핑퐁게임이다.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은 “세상은 크게 변화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 매우 안타깝다. 촛불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면서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낡은 이념의 잣대는 그만 버려야 한다.”

또 “국회가 일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뿐”이라고 했다. 정치권이라 했지만 결국 한국당 때문이라는 의미인데,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은 누가 할 것인가?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의 4+1구도를 그대로 둔 채, 5당대표회의를 거부하는 한국당을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다. 한국당에게 거절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먼저 일대일 회담을 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다. 혹시 있다면 진영논리에 빠진 소수일 것이다.

문제의 시발점인 패스트트랙 법안도 대통령이 해결책을 내야 한다. 각 당은 특정 문제를 위해 다른 쪽에서 양보한 것이지 의견일치는 아니었다. 선거법의 경우 합의가 안 되면 내년 총선은 현행대로 치르되, 차기나 차차기에 적용할 선거법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적당히 패키지로 끼워 넣을 문제가 아니다.

선거연령 18세 문제만 해도 엄청난 문제 아닌가. 김수현 정책실장과 이인영 원내대표의 사담(私談)에서 보듯이 레임덕이 걱정이라면, 그럴수록 국민전체를 포용하고 소통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문대통령 취임 2년차 지지율이 이명박, 박근혜 때보다 높다는 기사는 궁색하기만 하다.

퇴임시 지지율 60%로 역대 4위였다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적폐로 규정한 전임 대통령과의 비교는 자랑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여당의 시각으로만 보면 이룰 것이 없다. 모든 문제가 야당 탓이라고 해도 결국 이 시대는 문대통령의 시대고 문대통령 책임이다. 이제라도 소속정당이나 지지층에 대한 의리를 버리고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의리 없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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