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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허무맹랑

 

 

 

허무맹랑

/박세현

허무맹랑한 일들이 좋다

허무하거나 맹랑한 말들 역사들 사람들

국가들 선언들이 좋아졌다

왠지는 나도 모를 일

허무맹랑에는 답이라 할만한 게 없다

그것이 좋을 뿐이다



뜻있는 삶이라는 문장처럼

뜻없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것 같다

허무맹랑한 삶이라면 모를까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잠을 자고

매일 자판을 두드리고

매일

매일

 

 

 

 

시인은 “허무맹랑한 일들이 좋다”라고 고백한다. 누군가의 질문이나, 자신이 해온 작업에 대한 장고 끝에 나온 진지한 답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문득’과도 같은 문장의 포렴(布簾)이다. 이 포렴 앞에서 그는 젊은 날에 갈망했던, 시에 대한 모든 물음들을 한꺼번에 무화시켜버린다. 하지만 그 ‘답’은 시가 전혀 쓸모없다거나 추방시켜야 할 무엇으로 향하지 않는다. ‘허무맹랑’이라는, ‘의미-의-없음’의 세계 혹은 도저한 ‘무위’(無爲)에서도 시는 고고한 빛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시인은 자신이 쌓아온 내력과 믿음을 일순간 단절시키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인과와 말들의 표정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이 ‘인과’와 ‘배치’는 시인의 시선에 직접 작용하면서 일상의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는 송곳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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